말과 글, 글과 말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

써니케이 2007. 7. 18. 20:06

여름철 빗발이 공기 중의 먼지를 다 가신 후에

들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

어때요? 그림이 그려지죠?

그런데 여기서 간단히 트릭을 써 봅니다.

푸른 하늘과 파란 들판---

어떤가요?

그림이 뭐가 달라지나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말에서 '파란'과 '푸른'은

서로 바꿔 써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어감의 차이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두 말은 '파랗다'와 '푸르다'의 활용형이기 때문에

계통이 다르기에 어감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영어에서는 확실히 구분되는 색감인데(blue vs. green),

우리 말에서는 그게 잘 구분이 안 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미국에서 이것 때문에 우리 교민들이

애로를 겪는다고 하죠.

교차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파란 신호등을 'blue signal'이라고 표현하여,

색을 제대로 구분 못한다 하여 불리한 입장에 서기도 한다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파란 신호등은 'green'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색채에 관해서는 우리처럼 다양한 형용사를 가지고 있는 언어는 없습니다.

검다, 거멓다, 까맣다, 새까맣다, 거무죽죽하다, 거무직직하다, 거무튀튀하다, 까마퉤퉤하다....

문학작품을 뒤져서 '검다'와 관련된 표현을 찾아 낸다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 봅니다.

정말 색감과 그 표현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blue와 green에 대한 구분은 그리도 애매한 것일까요?

요즘의 국어사전을 보면, 대체로 blue는 '파랗다'로,

green은 '푸르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앞에서도 보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구분이 안 됩니다.

뭐가 옳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여기서 얘기를 접기로 하고,

이제 이 색상(green)의 상징성에 대해서 검토해 보기로 합니다.

교통신호로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 사용됩니다.

다른 색상은 별 문제가 없는데, 파란색은 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자, 파란색 신호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가시오'인가요?

그렇게 모두들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동차에 대한 의미로는 맞습니다만,

횡단보도에 서 있는 보행자에 대한 신호의 의미는 아닙니다.

빨간색 신호가 켜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누구나 인도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파란색 신호가 들어오더라도

꼭 가야 하지는 않습니다.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서 있는 운전자가 있다면

당연히 교통 방해죄로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횡단보도에서는 파란 신호가 났더라도

안 건너가도 됩니다.

그러니까, 횡단보도의 파란색은 '꼭 건너가시오(you must cross)'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너가도 됩니다(you may cross)'의 뜻이란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blue와 green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과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에 대해 잘못 해석하는 것이

서로 통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