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규 목사님을 추모하며
지난 7월 25일에 아프간에서 비보가 들렸다.
설마설마 했는지 샘물교회의 아프간 봉사단을 이끌고 가신
배형규 목사님이 탈레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신 것이다.
42살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 배 목사님은
자신이 그리워하던 하늘나라로 가고야 말았다.
우리는 아직 그의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 그가 목숨을 바쳐 항거했던 것인가?
자신의 책임 하에 있던 22명의 젊은이들을 지켜내느라
자신의 생명마저 간단히 버릴 수 있었던 것인가?
그냥 며칠 간의 인질 생활의 끝에 육신의 생기가 피폐해진 나머지
탈레반에 의해 타의로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닌지?
자신들의 희망과는 달리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서 시범 케이스로 희생 제물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이것과 저것이 얽힌 것인지?
우리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아쉬운 심정을 몇 마디로 말하고자 한다.
내가 배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우리 대학원생들 덕분이었다.
대학원에 다니는 크리스천 학생들은 대부분 분당 샘물교회를 다녔다.
우선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샘물교회의 젊은 분위기가
그들을 이끌었을 것이다.
박은조 목사님의 영적인 리더십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그 학생들 가까이에서 생활과 마음을 이끌어 주던
배 목사님의 역할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배 목사님은 대학원 기독학생 모임에 매주 참여하시고,
성경공부를 인도하셨다.
나는 기독학생회의 지도교수 입장으로 몇 차례 만났고,
식사도 한두 번 함께 했다.
배 목사님은 특히 외국인 학생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자기 나라를 떠나 어려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고민도 많고,
따라서 도와줄 일도 많았다.
샘물교회는 매 학기마다 외국인 학생 환영회를 열렬하게 열어주었고,
학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적절한 방법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 주기도 했다.
특히 한 외국인 학생이 복막염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병원을 알선해 주었을 뿐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도 우리 외국인 학생들은 안양 샘병원에 가면
한국 사람들 의료보험 수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바로 배 목사님이 샘물교회 장로님이 운영하는 그 병원과 우리 대학원 사이에
협약을 체결하도록 주선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도 그 샘물교회에 출석하였는데,
언제나 배 목사님의 세심하고도 순수한 면모를 늘 흠모하곤했다.
배 목사님과의 대화 가운데, 그 분이 장신대를 졸업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샘물교회는 소위 고신파에 속한다.
교회는 고신측 교회인데, 장신대(통합측)를 졸업했다는 것이 몹시 이상했다.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가 통합측인 제주영락교회 장로님이시다.
그러나 그보다는 바로 박은조 목사님이 장신대에서 공부하도록 권유하셨다는 것이다.
역시 열린 마음의 목회로써 많은 칭찬을 받고 있는
박 목사님과 그 제자라 싶었다.
배 목사님은 몇 해 전에 1년을 쉬셨다.
그냥 안식년이 아니고, 몸이 아팠던 것이다.
폐결핵 치료를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늑막염이라고도 하고,
하여튼 병명이 확실치 않아서 고생하였지만 결국 1년의 정양 끝에
회복하셨다 한다.
혹시 이번에도 그의 육신적 연약함이 열악한 환경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배 목사님은 외견상 전혀 목사님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성실한 면직원처럼 보인다.
옷의 세련됨 같은 것도 없고, 머리도 그냥 스포츠 식이다.
이번에 출국 사진에서 보다 싶이 그냥 그 환한 미소만이 일품인 그런 인물이다.
이제는 그 미소를 사진으로 밖에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존경하는 영적인 스승을 떠나 보낸 우리 졸업생들의
허망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MSN 메신저에는 아예 천국에서 만나자는 별명을 달아놓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목사님을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부디 그의 죽음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바람직한 지표로 이해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