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이야기
미국에 체류할 때 은퇴한 노교수 한 분과 우연히 짝을 이루어 골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던 중 한국에서는 어떤 고기를 먹느냐고 묻습디다.
그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먹고 양고기는 거의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한 말씀 덧붙인다면서 ‘개고기’도 먹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냐?’ 노교수가 살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개고기 먹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했더니,
“다른 것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개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참 지혜로운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결론적으로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옛날처럼 개고기를 복날에 보양식으로 먹지를 않고
일년 365일 언제나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복날이라면 한국사람들이 어렵게 어렵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이어
겨우 보릿고개를 넘기고 나서,
그래도 농삿일이라고 밭도 갈고, 써래질도 하고, 씨도 뿌리고,
모내기도 하고, 김을 매는 가운데
거의 탈진할 지경이 되어 있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먹을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보양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이 ‘개’가 아닐까요?
옛날에는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기보다는 거의 대부분
집을 지키는 용도로만 사용했을 것입니다.
가져갈 보물도 없는데 사실 집 지키는 용도도 아니고
그냥 애들이 퍼질러 놓는 대변을 처리한다든지
집에서 상해 버린 음식물을 처리한다든지 하는 용도로 활용했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 땅에서 살았던 개들은 소형견이 아니라
대부분 몸집이 적지 않은 품종들이었습니다.
사람과 무슨 정을 주고 받는 그런 반려동물(伴侶動物)의 처지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마음에 아무 거리낌 없이 개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평소에 주인을 가까이 하며, 집도 지켜주고, 마지막에는
주인의 건강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는 견공들에 대해 일말의 고마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 우리끼리 문을 닫고 살면 복날에 개 잡는 풍속은
무슨 문화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에서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문도 활짝 열렸고, 일년 365일이 어린이날이듯
매일매일이 복날이며, 사람들이 일상적 식사를 통해서도 보양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애들 똥을 잽싸게 먹어 치우는 견공들을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견변을 사람들이 정성껏 치워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 프랑스의 여배우는 BB는 한동안은 가슴 자랑을 열심히 하더니
그 모성애가 한국 견공들에게까지 미쳐서
보신탕 먹는 한국인을 야만인 취급하기도 합니다.
동물애호가들에게는 견(犬)은 애완용이고 구(狗)는 식용이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생물학상으로 그건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동양 사람들에게 개는 원래 ‘하찮은 것’의 대명사라고 해도
그건 옛날 얘기다라고 넘겨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동물애호가들은 개고기 먹는 사람들을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얘기하면 개를 비하하는 것이므로 이런 말 자체를 안 할 것입니다.)
개고기에 맛을 들인 한국 족속은 미국에 이민을 가서도
하다못해 코요테라도 잡아 그 허전함을 달래기도 한다는데,
이처럼 즐기는 음식을 강제로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정부에서 현행법의 범위 안에서 단속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개를 도살하는 것도 동물 학대죄로 입건할 수 있고,
개고기를 유통하는 것도 식품위생법으로 단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남 모란시장에는 아직도 버젓이 살짝 그슬린 누드 견공들이
식품으로 전시되어 있고, 보신탕집들은 성업 중입니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그러한 법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로 하고,
그러나 대내적으로 법의 시행은 유보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행정적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지금처럼 살아 나갈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그렇게 몰래 먹는 음식이 더 맛있습니다.
개고기를 정육점에서 팔고, 개고기가 수퍼에 포장육으로 등장하는 날에는
보신탕은 별 맛이 없을 겁니다.
다만 우리의 식음의 풍속이 옛날처럼 보다 겸손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