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나날들
헝가리에 오면 푹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만에! 밀린 일들이 엄청 많아서 사실 그리 쉬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이니 분주했다고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 있으니, 또 친밀감을 높일 필요도 있었지요.
그래서 도통 '훈국통신'이 제자리에 멈춰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친지분들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만,
전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밀린 일이라는 것은 내 프로젝트에 관한 일입니다.
신소설 어휘사전 편찬 연구 3년차가 끝났으니, 이제는 출판 준비를 해야 합니다.
3년 분을 모으니 어휘가 모두 92만 개가 넘었습니다.
그것을 서로 맞추어 주어야 했고, 정상화 처리도 다시 했고,
기본형 밝히기 작업도 마무리 해야 했습니다.
이 일에 거의 모든 시간을 몰두했습니다.
한국에서보다 잠을 덜 잤습니다.
얼마나 집중을 했으면, 집주인에게서 새로 받은 회전의자가 그만 박살이 날 정도였습니다.
(큰일 날 뻔했답니다.)
일단은 9부 능선은 넘었습니다. 좀 미진한 것들은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처리할 예정입니다.
그래도 내 일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워낙 자료가 많으니,
뭘 한 번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기쁨이 있어서 컴퓨터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루마니아에도 다녀왔고, 거기서 카탈리나와 안드레아도 만났습니다.
부다페스트에는 두 번 다녀왔습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드디어 자동차를 샀습니다.
이제 자동차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두 대, 여기 한 대...
좋은 중고차를 샀습니다. VolksWagen PASSAT랍니다.
내가 사는 페치는 작은 도시이고, 헝가리에서는 웬만한 도시에는
대중교통 체계가 괜찮아서 굳이 자동차를 굴릴 필요는 없지만,
여행용으로 쓰려고 산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헝가리에 온다면, 내가 그 차를 태워줄 것입니다.
이동에 자유가 생기면서 더 바빠집니다.
차가 없어서 못 가보던 대형 매장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워낙 한국에서도 장 보기를 좋아하던 나이기에,
그 버릇을 여기서도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여기에는 주로 TESCO가 대표적이고, 그보다는 생활용품이나
건축 자재, 공구 등을 파는 Praktiker, BauMaxx 등을 좋아하지요.
지난 번에 한국 학생들 초대해서 밥을 해 줬는데,
식탁이 부족해서, 내가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해결했답니다.
여기에 집 한 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스스로 재료 사다가 뚝딱뚝딱 짓고, 고치면서 살면 재미있겠지요.
이번 주부터는 드디어 한국어 클래스를 시작했답니다.
그 소식은 다음에 올릴께요.
그럼 이만...
김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