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마를 파사트로 만드는 방법
막상 차를 운전하면서 자기가 타고 있는 차가 어떤 종류인지를 느껴 가면서 운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차를 운전하면서 활용하는 감각은 주로 시각인데 그 시각은 주로 차 밖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 분들은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전해지는 진동이나 변속 시점에서 느껴지는 흔들림만으로도 차의 종류는 구별할 수 있다.
또한 시트에서 느끼는 안락감이나 서스펜션의 기분으로도 차종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처럼 몸으로 느끼는 감각은 아주 세밀한 것이라서 일반인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내가 말하고 싶은 차종의 변신은 실제 차를 물리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감각적 느낌을 바꾸어 주자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경우는 차에서 느끼는 감각을 똑 같게 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전과는 다른 차종의 차를 타면서 이전 감각을 느끼고 싶은 경우에 한정된다.
사실 옵티마를 변신시킨다면 외관상으로는 BMW 쪽이 더 가깝지 않겠는가?
나는 지난해에 유럽에 일 년 간 체류했었다.
그곳에서 폭스바겐 파사트 2.0 TDI DSG(2008년식)를 구입해서 탔다.
워낙 유명한 엔진과 변속기인지라, 그 명성에 걸맞게 주행 성능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디젤 엔진이라서 토크가 좋고, 연비도 고속도로에서는 20km/l 이상으로 올라갔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 가지고 오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나, 운송도 간단치 않고 세금 부담도 해야 하며, 결정적으로는 한국에서 외제차를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하여 현지에서 적절한 가격에 처분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진주색 2001년산 옵티마 VS Winner였다.
이미 배터리는 다 방전되어 버렸고, 가기 전부터 고질이었던 제동장치는 아예 망가져 버렸다.
아울러서 파워스티어링액도 연결 호스가 다 녹아서 줄줄 새고 있었다.
‘파사트 가져올 걸’ 이런 후회도 있었고 집에서는 폐차하고 연말 세일 때 새 차를 사자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큰돈이 안 든다면 고쳐 쓰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는 생각으로 정비공장에 맡겼다.
특히 하체의 다른 부분까지 점검하여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수리를 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최대로 잡았던 예상액의 절반 수준에서 수리가 다 되었다.
엔진 성능은 현재 15만 km인데, 30만 km까지는 괜찮을 듯싶고, CVT 변속기도 여전히 매끄러웠다.
주행 시 힘이 부족한 것 말고는 폭스바겐이 절실하지는 않게 되었다.
게다가 핸들은 묵직하고, 주행시 바닥을 누르면서 지나가는 느낌은 독일 차 비슷한 기분도 주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의 산악지역과 헝가리의 평원지역을 운전할 때의 느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행을 하면 그냥 한국의 자연과 도시만 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럽 자동차에서 즐겨 듣던 CD를 옵티마에서 들으면 어떨까 싶었다.
주행 중에 도로와 동력 전달 체계로부터 느끼던 감각과 그 노래에서 전해 오는 감각이 결합되면서 장시간 주행의 피로도 많이 줄어들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파사트에서는 유난히도 자주 들었던 CD가 있다.
잘츠부르크 아울렛 KRUPS 매장에서 선물로 받은 음반이었다.
컴필레이션 CD였는데, 80년대 팝송 12곡이 들어 있었다.
Dancing queen, only you, Up where we belong 등 내게는 추억의 팝송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99 Luftballons (99개의 풍선)이란 노래를 자주 들었다.
유일하게 독일 가수인 Nena가 유일하게 독일어로 부른 노래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노래가 파사트의 오디오와 매칭이 아주 잘 되었다.
첫 부분에 베이스기타를 울려대는 부분이 있는데 파사트의 스피커가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독일 생산 차라서 독일어를 제일 잘 받아들이나 보다 싶었다.
거참, 오디오가 언어를 아는가?
한국에 돌아온 후에 오늘 처음으로 그 CD를 옵티마의 CD 트레이에 넣어 보았다.
8개의 영어 노래를 지나 드디어 9번째의 트랙이 되었다.
첫 번째 비트부터 베이스기타의 다이나믹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 정확히 파사트에서 듣던 소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사트의 소리보다 훨씬 좋았다.
옵티마 VS Winner의 헤드유닛은 무출력이고, 트렁크에 외장 앰프를 갖추고 있다.
당연히 출력도 훨씬 높았고, 특히 고음에서의 해상도가 아주 좋았다.
그러고 보니 악기의 질감이 선명했다.
드디어 옵티마가 파사트로 변신한 것이다.
파사트에서 느꼈던 소리의 감각을 옵티마에서 재현한 것이다.
아니, 적어도 오디오만큼은 지금 이 차가 작년 그 차보다 더 좋았던 것이다.
이제 다음에 해외 체류의 기회가 된다면 한국 차에서 듣던 청각적 기억을 외국 산 차에서 재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