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글과 말

거실 구석에 멀뚱하게 서 있는 에어콘 군

써니케이 2016. 8. 3. 07:39

 

더워요. 매우요. 기온을 조절할 능력이 없으니 그냥 더위에서 벗어나고만 싶어요. 저 알래스카쯤 가면 서늘하겠지만, 그걸 몰라서 여기서 이렇게 종일 선풍기를 끼고 있는 건 아니예요. 잘 아시죠?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고, 저녁이면 집에 와야 해요. 먹고 살려면 할 수 없어요.

근데 거기나 여기나 더운 건 마찬가지예요. 거기는 공공기관이라고 28도가 넘어야 냉방기가 돌아요. 그런데 바람이 살랑살랑 잘 통하는 백엽상의 온도가 28도면, 사무실은 30도가 넘을 거예요. 정말 푹푹 찐다는 하소연이 나올 때쯤에야 팬이 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집에 와선 잠이라도 잘 자야 하는데 완전 열대야예요. 굳이 적도 근처에 가지 않아도 이미 아열대를 신나게 체험하는 셈이예요. 초저녁에 찬물로 샤워했더라도 자기 전에 다시 한번 해야 돼요. 선풍기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가 보내오는 것은 아열대의 더운 바람 더하기 모터 자체에서 생산되는 열기에요. 한마디로 열풍기가 되는 거죠.

정수기에서 냉수를 줄곧 뽑아 먹어야 하구요, 나아가서는 냉동실의 얼음을 우적우적 바숴 먹어야 해요. 좀 걱정되시죠? 그러다가 이빨 나갈 거라고요. 에이 괜찮아요. 아들이 치과의사니까 어떻게 해주겠죠? (무식한 짓 했다고 퉁사리는 먹겠지만요. 큭큭)

 

그런데 이렇게 푸념을 하는 동안에 저 거실 구석의 키가 껑충한 에어컨이 뭐라고 하네요. 왜 자길 무시하냐구요. 그래요 우리 집에선 웬만하면 저 친구 신세 안 지려 해요. 이사하면서 가스를 빵빵하게 넣어두어서 틀기만 하면 금세 시원해져요.

에어컨을 무시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내 수입이 에어컨을 상시 틀 정도가 아니거든요. 다른 게 아니고 한국의 전기세 누진료가 세계 최고 수준이래요. 실내온도를 한 25도쯤으로 맞춰놓는다면 한달에 기십만원이 공중으로 날아가버린다는 거예요. 그것이 에어콘 리모콘이 에어콘 본체의 자석에만 매달려 있는 이유예요.

그러니까 에어콘을 틀면 거기서 나오는 냉기 때문에도 시원하지만, 계량기 돌아가는 속도때문에 벌벌 떠는 거예요. 아이러니죠.

 

근데요, 우리라고 이 더운 날에 이렇게 에어컨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 건 아니예요. 정말 하루 종일 원없이 돌려본 적이 있어요. 미국에 파견 나갔을 때에요, 버지니아텍은 학교에 발전소가 있어서인지 연구실에 제한 없는 중앙공급식 냉방이 제공되었구요, 폭스릿지 아파트에서는 전기요금 걱정없이 에어컨을 썼어요. 미국에서는 커피, 아이스워터 그리고 냉방 인심이 너무 좋았어요.

어느 정도냐면요, 일반전화 설치하는 데 3주씩이나 걸리지만 에어콘이 고장이라고 신고하면 정말 득달같이 달려와요. 냉방이 안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삶의 질 향상은 고사하고, 너무 더우면 질병을 일으키고 생산성를 낮춘다는 것을 당국자들이 생각해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이제쯤은 전기 사용에 대한 비용지불을 "전기세"라고 생각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나는 나대로 절전을 위해 노력할게요. 꼭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