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만져보는 진공관
50년만에 진공관을 만져본다. 물론 지금은 사라져버린 백열등도 진공관이긴 마찬가지지만 내가 말하는 진공관은 진공상태에서 전자가 움직이면서 소리의 신호 증폭하거나 변경해 주는 장치를 말한다. 50년 전에는 우리 집에 있었던 금성(Gold Star) 라디오에 그것이 있었고, 50년만에는 엊그제 구입한 오디오 프리앰프(메인 앰프 앞단에서 신호를 처리해 주는 앰프)에 그것이 있는 것이다. 사실 제대로 하자면 포노 앰프(LP 디스크의 신호를 증폭하는 앰프)와 메인 앰프에도 진공관을 써야겠지만, 음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프리앰프만 진공관 식으로 장만한 것이다. 말하자면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하이브리드 앰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림처럼 가로세로 10cm도 안 되고 높이도 2.5cm에 불과한 까만 본체 위쪽에 자그만 진공관이 두 개 꽂혀 있는, 음질 조정이라고는 그 크기밖에 조정할 수밖에 없으며, 입력과 출력에 단지 RCA 스테레오 잭을 각각 하나씩 꽂게 되어 있는 이 앰프는 외부에서 DC 12v를 받아서 작동한다. 진공관 앰프는 진공관을 외부로 노출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디자인이다. 방열의 취지도 있지만, 시각적으로도 근사해 보인다. 이번 앰프는 케이스 자체가 작기 때문에라도 절대 케이스 안에 둘 수가 없다. 특히 진공관에는 음극 양극의 전극이 있고, 필라멘트로 되어 있어서 전원을 넣으면 느긋하게 달궈지면서 불이 들어온다. 대부분 투명 유리로 감싸인 진공관은 그 유리에서 반사되는 빛도 멋지다. 여러 개의 진공관을 갖춘 앰프는 이 진공관들이 내뿜는 열기 못지않게 빛의 난반사도 근사하다. (이번에 구입한 진공관은 전원을 넣자마자 붉은 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진공관 바닥에 붉은색 LED를 심어놓은 것이었다.)
사실 빛이나 색은 진공관의 본질은 아니다. 문제는 소리다. 소리는 객관적인 수치로도 표현될 수 있고, 주관적인 느낌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수치상으로 진공관은 트랜지스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가령 소리의 크기로 말할 때, 앰프의 출력은 와트(watt)로 표시된다. 이 와트의 수에서 진공관은 트랜지스터보다는 현저하게 작지만, 실제 소리는 그 와트에 비례하지 않는다. 느낌으로는 대부분의 음악애호가들이 진공관의 음색을 따뜻하다고 표현한다. 이 공감각적 표현(청각을 촉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트랜지스터의 음색이 멋진 수트를 입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회사원 같다면, 진공관의 그것은 다소 낡은 작업복을 입고 자기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예술가 같다고나 할까?
요즈음에는 거의 모든 음원(source)이 디지털이어서 기기들 사이의 연결도 광케이블 같은 디지털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원음 재생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계들을 거치면서도 음질이 변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처리하는 신호의 품질도 이미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넘어섰다. 이러한 소리를 구현해 내기 위해서 고품질의 신호처리를 따로 담당하는 기계들도 개발되었고, 스피커나 헤드폰들도 그 재질과 자석 등을 바꾸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아무리 오디오 마니아라고 해도 이러한 발전상을 좇아가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어느 선에서 멈추는 것이, 자신의 은행 통장이나 가정 경제나 배우자의 심기를 위해서 좋다.
나는 진작 정지상태에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늘 진공관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트랜지스터 앰프나 디지털 앰프에 질려서일까? 음악실에 진공관 앰프를 몇 개씩 올려놓고 있는 다른 음악애호가들이 부러워서일까? 뭐 그런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50년 전에 나의 장난감이자 좋은 실험 대상이었던 진공관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