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아름다운가☆

롯데콘서트홀에서 모테트를 듣다

써니케이 2018. 8. 19. 18:03


얼마 전에 지인의 초대로 롯데콘서트홀에 다녀왔다.

박치용 님이 이끄는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연주도 많이 궁금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주홀 자체도 관심사였다.

티켓을 사서 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궁금함을 핑계 대고 염치불고하기로 하였다.

롯데콘서트홀은 국내에서(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클래식 연주홀이고, 국내 대기업의 이름을 걸고 지은 것이니 내 기대는 결코 적을 수가 없었다.

2000석이 조금 넘는 객석에 70% 정도의 관객이 자리 잡았다. ‘빈야드스타일로 구성된 연주홀은 개방감이 있고, 무대와 객석의 호흡을 유지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레파토리는 젤렌카(Jan Dismas Zelenka)라는 바로크 작곡가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보헤미아 출신의 이 작곡가는 바흐(J. S. Bach)와 동시대인으로서 바흐가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의 합창장이었을 때, 인근의 드레스덴에서 교회음악 궁정작곡가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35명 정도의 혼성합창단과 4명의 독창자들 그리고 쳄발로와 오르간이 포함된 30명 정도의 관현악단까지, 바로크 음악을 위한 준비는 충분했다. 쳄버의 규모는 조금 넘은 정도였다.

이들이 생성하는 사운드는 과연 이 롯데콘서트홀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사뭇 궁금했다.

사실 연주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악기다. 같은 연주자가 동일한 음악을 연주해도 연주홀마다 결과물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할 때와 명동성당에서 연주할 때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

불행히도 나는 이번이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연주를 처음 접해 보므로, 비교에 의한 평가는 가능하지 않다. 다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합창 음악이라는 정도로 설정하여 비교해 본다.

합창음악은 성악이다. 거기에 악기의 연주가 함께 한다. 사실 음향의 재현이라는, 음향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것을 최선으로 삼는다면, 이러한 연주홀에서의 연주는 평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성악가들은, 전기적으로 확장된 음향을 즐기는 대중음악가들도 적절한 정도의 반향을 즐긴다. 그러니까 원음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주목하지 않고 연주홀의 공간을 헤집고 다닌 후에 만들어지는 모든 음향을 주목하는 것이다.

롯데콘서트홀의 반향 시스템은 훌륭했다. 소리가 잘 울린다. 공간의 설계도 잘 되어 있고, 소리가 부딪치는 벽면의 재질이나 객석의 형편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보다도 연주자가 좋아할 일이다. 연주자는 자신이 만드는 소리와 공간이 이어 주는 소리를 조화시키며 연주 역량을 배가할 수 있다.

반향된 음향은 객석의 자리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등급의 좌석을 샀더라도 동일한 음량, 같은 음색, 일정한 반향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연주홀은 사실 희망사항일 뿐이다. 무대에 대한 조감, 소리의 품질에 따라 좌석의 등급이 정해지는데, 뜻밖에도 몇몇 리뷰를 보면 롯데콘서트홀은 가장 낮은 등급의 좌석(홀의 제일 끝지역이나, 합창석 그리고 합창석의 좌우)조차도 좋은 음향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건 아직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음에 확인해 보기로 하자.)

나는 객석의 중간쯤에 무대를 바라보고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의 소리가 가까운 대신 반향은 약할 만한 곳이었는데, 이런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음향의 반향은 매우 좋았다. 귀를 쫑긋하고 청신경을 잔뜩 긴장해서 들을 필요가 없었다. 편안한 음향이었다. 대규모 편성은 아닌데도 음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이제까지는 긍정적이다. 이제부터는 부정적이다.

소리가 겹치고 겹치면서, 무대의 음향과 반사된 음향이 섞이면서 조금은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첫 레파토리인 ZWV 20의 미사곡의 첫 곡 키리에부터 그랬다. 도저히 35명의 합창단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도의 만만치 않은 음량이 울려 나왔다. 연주회 내내 그랬다. 라틴어 연주라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들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우리말 가사로 된, 미사곡이 아닌 다른 창작곡이라면 이런 경우에 도무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성악에서는 가사의 표현이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내가 연주자라면 아티큘레이션(발음)에 유의해야 했다. 기악의 경우는 물론 연주홀의 도움으로 풍부한 음향이 만들어졌지만, 악기의 음색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연주홀의 음향을 평가할 때, 반향과 더불어 소리의 명료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롯데콘서트홀은 반향과 명료성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추지 못했다. 그 둘은 서로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이 홀은 전자에 방점을 두었다.

하나의 콘서트홀은 그 건축에 소요되는 기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스피커조차도 에이징이라고 소리가 제대로 자리 잡는 기간이 필요하다. 이 콘서트홀도 이제 완성을 위한 에이징을 해 나가야 한다. 다양한 장르의 수없이 많은 연주를 거치면서 최대공약수일지 최소공배수일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파이프오르간 연주라면 당장이라도 합격점일 것 같다. 이 연주홀의 잔향 시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성당의 잔향보다는 짧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