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 실험 맨
어렸을 때에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게 된다.
그 중에 엉뚱한 발상과 무모한 용기의 인물들이 적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위인의 자격 조건일 수도 있다. 계란을 직접 품어보거나, 수소를 들이켜서 하늘을 날아보려 했다는 이야기는 비록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나, 결코 우리가 흉내낼 수 없는 비범함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우리 친구들 중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들의 긍지는 높아만 갔다. 누굴까? 기나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6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에는 정말 할일이 없었다. ‘바캉스’는 프랑스에나 있는 말이었고, 우리들의 방학 과제는 단지 방학책 한 권 푸는 일과 몇 가지 과제(예를 들면 곤충 채집 같은 일)에 불과했다. 따분했다. 그래서 결국은 개학이 기다려지게끔 되었다. 친구들은 조금씩 더 크거나, 더 세련되거나(서울물 좀 먹고 온 친구의 경우), 까맣게 타버리거나(외가집에 가서 물장난만 실컷 하다 온 친구의 경우) 전학을 가버려 아예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그 중에 익휘는 팔뚝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한 마디로 데었단다. 하필이면 팔뚝이 데었단 말인가? 익휘는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자 신이 나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그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과학적 실험의 여파로 생긴 상처라는 것이다. 익휘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많이 궁금했다. 양동이(당시 표현으로는 바께쓰)에 물을 담고 일정 속도 이상으로 돌리면 그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직접 실험을 하게 되었다. 신나게 돌려 대니 정말 양동이 안의 물은 바닥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한참을 돌리니 힘이 들었다. 회전 속도가 줄었다. 드디어 양동이 안의 원심력과 구심력은 평형을 잃게 되었고, 오히려 구심력이 더 커지고 말았다. 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런데, 왜, 데었느냐? 아뿔싸! 익휘는 끓는 물로 실험을 한 것이다. 친구들은 그 대답을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필 끓는 물이었느냐 말이다. 어쩌면 그때 마무리하지 못한 물에 관한 그의 관심이 방향은 약간 달라졌지만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