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글과 말

가상 공간을 지킬 양심이 필요하다

써니케이 2006. 5. 15. 21:30

[작은 행복(코오롱 사외보)] 1996년 9,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컴퓨터 통신망은 20세가 말에 불현듯 나타난 새로운 통신 매체다. 한때 전화가 그랬듯이 의사소통의 새로운 통로를 열어놓은 것이다. 통로가 바뀌면 의사소통에 관계되는 모든 요소들-발신자, 수신자, 메시지 등-의 태도며 방식이며가 따라서 바뀐다. 이 변화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한 마디로 '새로운 세계' 즉 하나의 '가상 공간(cyber space)'의 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날이 갈수록 가입자가 늘어만 가는 이 공간은 아직도 그렇게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 공간 자체가 완성되어 있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정작 입주자들이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법 자체가 아직 서툰 것이 더 문제다. 새로운 언어세계에 적절한 말씨도 그렇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 기본적인 정신과 태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아이디(ID)를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고, 통신을 이용한 사기 사건도 적지 않이 일어나며, 소위 해킹(hacking)이라는 정보 침범 현상도 보인다.

그것은 '열린 공간'으로서의 PC통신의 특징 때문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규제하는 법이 없다. 단지 공개적 게시판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만 삭제될 뿐이다. 글의 수준이 미달되었다고 해서 편집자가 자르는 법도 없다. 결국 개인의 양심과 양식에 맡기고 있는 셈인데, 그러기에는 아직 가상공간의 양심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가상공간이기는 해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규율 자체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닐 터인데 왜 문제가 되는가?

 

가상공간 입주자들 대부분이, 기성세대가 아닌 이른바 컴퓨터 세대(컴세대)라는 점이 큰 요인일 것이다. 이 공간의 게시판을 휘젓고 다니면서 공공연히 낙서를 붙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어법은 좀 거칠다. 그들은 대화방을 소란스럽게 만들며, 만화를 읽으면서 터득한 말씨를 자랑스럽게 구사한다. 언어의 통로와 그에 적절한 말씨를 체득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기성세대들은 통신망에서 맥을 못 춘다. 대화방에 무작정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동료 교수들은 활당했던 경험담을 들려주곤 한다. 먼저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다는 것이다. 자기 나이를 한참 낮추어 30대라고 밝히더라도 "할아버지가 뭣 때문에 들어왔느냐?"고 야단이 난다. 그래도 곧장 나가기는 뭐해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노라면, 도무지 저게 한국말인가 싶을 정도로 괴상한 말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게 된다. 타이핑 속도는 무척 빠른 것 같은데 알아듣지 못한 말, 틀린 말 투성이이고, 웬 점(...)은 그리도 많이 찍어대는지.... 결국 극도의 소외감 끝에 빠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전부라면 나는 만사를 젖혀놓고 당장이라도 통신망 철폐 운동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또한 통신에 좀 일찍 빠져든 컴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얼마든지 긍적적인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때 내가 시솝(SYSOP: 운영자)으로 있는 [천리안]의 한국어전산학회 동호회방에서 소중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동호회의 대화방에서, 서울과 천안과 대구와 부산과 광주와 익산에 있는 회원들이 소위 전자 대화(electronic chatting)라는 거창한 행사를 벌인 것이었다. 대화에 참여한 회원들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무척이나 흥미롭고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했다. 게다가 1시간 남짓 진행된 회의의 기록은 갈무리(capture) 방법으로 간단히 처리될 수 있었다.

컴퓨터 대화를 흔히 채팅(chatting)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잡다한 얘기를 방담 형식으로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화방에 들어가 보면 그런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통신망의 주요 참여자가 되어서, 그러한 일반적인 상황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대화방을 주도하려면 물론 대화 내용에 정통해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타자 실력이 더 문제가 된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다다닥 쳐낼 수 있을 정도로 타자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컴퓨터 통신망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하게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표정을 나타내기 위해 표현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말을 줄여 쓰는 것도 통신비 절약이라는 명분으로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면 타당하며, 어쩌면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장소-대화방, 게시판, 전자우편-에 적절한 어조와 말씨를 갖추는 일이다.

따라서 표현에 있어서도 웬만하면 눈감아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표현 중에는 확실히 좀 못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더러는 깜찍하고 정이 듬뿍 담긴 표현들을 건질 수도 있다. PC 통신의 대화는 대개 온라인 상태에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틀린 표현, 준말 등은 애교로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학기에 한 대학에서 [국어정보학] 강의를 했었다. 중간고사 보기 이틀 전에 통신망을 통해서 예상 문제를 공개하겠다고 제의했다. 하이텔과 천리안에서 각각 한 시간씩 진행된 대화에 학생들은 진지하게 참여했다.

그런데 강의실에서는 나를 어려워하던 이들이 대화방에서 만나게 되니 농담도 하고, 애원도 하고-문제 좀 쉽게 내달라고, 통사정도 하고- 시험 안 볼 수는 없느냐고, 히죽거리기도 하고- 타자가 잘못되었을 때, 하여튼 격의 없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PC통신을 통한 만남은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렇다. 대면할 때는 대화에 참여한 '나'와 '너'가, '교수 대 학생' 즉 사회적 신분이나 기타 여러 가지 탈(persona)을 쓰고 만나게 된다. 그러나 통신의 대화방에서는 일단 그런 탈이 벗겨지고, 새로운 탈을 쓰고서 목소리를 바꾸게 된다. 그걸 '네티즌(통신사회의 시민)의 탈'이라 부르자.

일단 친근한 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PC통신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언제나 진실이 중요하듯, 통신에서도 진정한 자아가 함께 하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통신에서 진정한 자아로서 만나지 못한다면, 대화방에서 실명제를 실시하지 못한다면 사이버월드는 그저 환영에 불과할 것이다.

세계는 이미 PC통신의 가상세계에 젖어 잇다. 이 세계를 제대로 규율할 세대, 이를 윤택하게 만들 세대가 이제 입주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