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라는
것의 맛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다.
당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음료라는 것은 아마도 ‘사이다’가 전부였지 않았나 싶다.
코카콜라도
없었고, 칠성 사이다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에는 그 지역의 사이다 공장이 있었다.
이리
시내에도 지금의 경찰서 사거리의 맞은편에 사이다 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사이다라는 것이 맹물에다 사카린과 소다를 적당히 섞으면 아무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수요만 있으면 공장을 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보편적이지는 못했으니
그냥
미지근한 사이다를 탄산수로만 마실 뿐이었다.
혹은
밥을 급히 먹어 체증이 있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는
그
치료제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그런 사이다를 마실 수 있는 기회는 소풍 때뿐이었다.
지금은
그런 탄산음료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콜라
공장들이 천연 주스 공장으로 전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때는
사이다라는 것이 정말 천상의 음료인 듯만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셔본 것이다.
맥주는
당연히 초등학생에게는 아니 고등학생에게도 금지된 음료였다.
그걸
마셔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소풍 때 생겼다.
다
알다시피 소풍 때가 되면 학부모들은 자식들 도시락 싸랴
선생님들
음식 준비하랴 여간 분주하지 않다.
선생님들은
그날 최선의 대접을 받는다.
학부모들은
성심 성의껏 음식을 준비한다.
이때
음료나 주류가 빠질 수 없고, 맥주만 해도 대단히 선호하는 주류였던 것이다.
소풍이
끝나면 그 중에는 남는 음료도 생기는 법이다.
마저
다 비우지 못한 맥주병(캔은 없었다.)도 있었다.
소풍에서
남고 처지는 물건들은 다시 학교로 옮겨진다.
표
주사 아저씨는 리어카를 끌고 그것들을 싣고 학교로 간다.
우리는
최고 학년으로서 그 일에 동원되었다.
숙직실에
옮겨진 음식물 중에 일부는 우리 차지가 되었고,
그
중에 바로 남겨진 맥주병도 포함되었다.
나는
그 맛이 무척 궁금했다.
왜
어른들은, 선생님들은 그 맥주라는 것을 그리도 좋아하는 것인지…….
정말
많이 궁금했다. 호기심이 생겼고, 남은 음료의 일부의 맛을 보기로 한 것이다.
한
모금을 마시니, “아이고, 이게 무슨 맛이냐?”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
이상했다. 냄새도 고약하고,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왜
이런 고약한 음료를 어른들은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씩 이웃에 사시던 큰이모부가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그럼
나는 주전자 하나를 받아가서 거기에 막걸리를 채워 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맛을 본 일이 있다.
약간은
시큼한 맛이 있었고, 어쩌면 단맛도 있었다.
술
냄새도 있었지만 향기도 없지는 않았다.
물론
큰이모부가 술만 마시면 늘상 헛소리만 해댔기 때문에
막걸리의
향이 야릇하게 끄는 매력이 있기는 했지만
막걸리를
비롯한 술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도 술을 전혀 안 하셨다.
정말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술맛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뭐 그렇게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러니
역시 사회생활에서 손해 보는 일이 없지 않았다.
전임교수가
되고 싶어 하던 시절에 비록 농담이긴 했으나
국문과의
교수들은 ‘술 못 먹으면 국문과 교수는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시곤 했던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고 정한모 교수는
양주를
글라스에 가득 채워 마시면서도
절대로
칵테일은 하시지 않았다.
그걸
나에게 권할 때는 정말 난감했다.
탁자
밑에 빈 컵을 감추고 요령껏 피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초죽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술에 대한 태도는 이렇다.
나는
모든 술의 첫 잔을 즐긴다.
어떤
술이건 그 술에 적합한 잔에 담으면
그
한 잔은 술자리의 끝까지 완수해 낼 자신이 있다.
운동을
하고 난 다음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그
이상의 음료가 없을 정도다.
시원할
뿐만 아니라, 갈증이 싹 가신다.
술을
마시는 것이 흥을 돋우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면
나는
그 한 잔으로도 얼마든지 기분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잔째부터는 왜 그렇게 맛이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내가 즐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옆
자리의 동석자들에게 즐겨 권하지 않음을 물론이다.
하니,
누구라도 나와 술자리를 함께 한다면 이러한 나의 태도와 각오를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단,
술값에 부담이 없으니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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