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번에 중국 봉사활동에서 얻은 한 가지 소감을 이야기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솔했던 고1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오로지 자기들 얘기에만 빠져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과밭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사과나무 가지에서 꽃이 떨어지고 난 다음에 씨방들이 점차 자라 동그란 열매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벌들과 기타 날벌레들이 다녀가서인지, 꽃이 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작은 사과 알들이 맺혔습니다.
촘촘하게 생겨난 어린 사과들은 새로운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과 아주 비슷한 물건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었고, 비슷한 또래였기에 서로 얘기가 통했습니다.
일단 눈만 떴다 하면 옆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얘기는 하루 종일 계속됩니다.
목이 마르면 가끔씩 줄기로부터 전해지는 수액으로 목을 축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친구와 더불어 얘기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어느 줄기에 붙어 있으며, 그 줄기가 어느 나무에 달려 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사과인지 배인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옆에 있는 친구들이 좋을 뿐입니다.
물론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씩 언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냥 말싸움일 뿐 주먹다짐은 없습니다.
잠깐의 신경전이 벌어진 후에는 이전의 친밀한 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그들은 대화의 천재 같아 보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그리 근사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친구들 얘기,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얘기, 탤런트 얘기, TV 드라마 얘기 등등입니다.
그리고 그냥 그것이 싫다, 좋다, 나쁘기, 사고 싶다, 그런 유의 얘기일 뿐입니다.
그들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대화에 피곤할 뿐입니다.
가끔씩은 캄캄한 밤까지 대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저 하늘 위에서부터 햇빛의 기운이 이 작은 새끼 사과들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촘촘히 붙어 있어서 일일이 그 살결을 어루만져 주지 못합니다.
그냥 대체로 빗겨갈 뿐입니다.
가끔씩 내리는 빗방울도 어린 사과의 살결에 묻어 있는 먼지를 벗겨 주지 못합니다.
산들바람은 불어서 이들에게 새로운 공기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태풍이 불면 어린 사과들이 줄기와 단단히 묶여 있질 못하고, 댈렁댈렁 흔들리다가는 겨우 떨어지는 것만은 모면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어린 사과들은 그냥 옆에 있는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좀 더 멀리에 있는 같은 족속들은 그들의 관심거리가 못 되었습니다.
어린 사과들은 그런 식으로 한여름을 보내고, 초가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수확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어린 사과들은 이제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어쩐지 어른 티가 나지 않습니다.
별로 자란 것 같지 않습니다.
사과의 살결도 그냥 붉으락푸르락합니다.
잘 익지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과일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초라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다른 나무의 사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덩치가 너무 커서 자신들보다 다섯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크기는 물론이고 그 색깔부터가 달랐습니다.
색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온몸이 다 그렇게 탐스러운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을까요?
대체 뭘 먹고 저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고, 예쁜 피부를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종자가 달랐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같은 사과 밭에서, 같은 종자로 태어난 것은 분명했습니다.
사과 밭 주인이 특별한 영양분을 더 준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왜소증 같은 병에 걸린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나무의 반대편 가지에 달린 사과들도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슨 이유로 그들은 그렇게 탐스럽게 자랐고, 자신들은 형편없는 모습이 되어버렸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냥 자신들은 생애의 시간을 친구들과 가까이서 얘기하는 데 보낸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것이 문제였나 봅니다.
자신들이 햇빛과 바람과 비를 무시하면서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무심한 채 오로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동안, 그들은 무슨 딴 짓을 한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저 바깥에서 오는 햇빛을 받으며, 심지어는 사과 밭의 바닥에 깔린 은박지로부터 반사되어 오는 빛조차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과육의 부피를 키워 갔던 것입니다.
저 아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액을 흠뻑 빨아들이기도 하고, 피부를 적시는 빗방울로부터도 수분을 흡수하여 과육을 탄력을 높였던 것입니다.
햇빛과 수분은 서로 협동하여 많은 영양분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내었습니다.
아니 가까이 코를 대면 향긋한 냄새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러고 보니 친구들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과 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시선도 다른 사과 친구들을 향하지 않고, 오로지 저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햇빛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씽씽 그들을 건들었지만 가지에 매달린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좀 외롭게는 보였어도, 당당한 몸집에 어딘가 모르게 귀티가 흘렀습니다.
결국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 종일 이야기만 하던 사과들은 다른 사과들이 비싼 값으로 팔려 가는 동안에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얘기는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주제는 바뀌었습니다.
신세 한탄이나 후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비난의 얘기들이었습니다.
늦가을까지 가지에 어정쩡하게 매달려 있던 그들은 결국 까마귀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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