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토마스교회 방문기
이번 유럽 여행에서 무엇보다도 뜻깊은 것은 바로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성토마스교회는 J.S.Bach가 27년간 칸토르(합창장)로 봉직하고
1750년에 그의 생을 마감했던 곳이다.
아실지 모르지만 나는 이 위대한 음악가인 바흐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그의 음반만도 몇 백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한 동안 그의 이름을 따서 [요한음악실]이라는 음악 컬럼을 썼던 일까지 있다.
작년에 그리스 땅을 밟아본 일이 있으므로 유럽 방문은 두 번째가 되었지만,
사실 내가 유럽에 가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 바흐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장차 바흐 일생의 흔적을 그의 음악과 함께 탐색해 보는
바흐 투어(Bach Tour)를 시도해 보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왔다.
이번 여행은 우리 연구원의 공식적인 출장이라서
그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였지만
기간이 길다 보니 주말을 끼게 되었고,
그 주말을 이용해서 예정하지 않은 여행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베를린에서 맞이한 주말에 바로 라이프치히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5일짜리 유레일 패스(180불)를 소지하고 있었고,
기차를 타보는 것 자체도 즐거운 여행 체험이 되는 데다,
라이프찌히까지는 베를린에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로지 라이프치히를 가기로 했고, 베를린에서 만난 분들도
적극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라이프치히는 구동독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바흐를 좋아하던 총각시절부터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나
십여년 전에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는 엄두를 내기 힘든 곳이었던 것이다.
이 도시는 옛부터 견본시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오늘날에도 상업도시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관광지로도 이름이 나 있었다.
관광지가 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바흐의 최후의 활동 지역이란 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토요일 오후 세시에 바로 성토마스교회에서
열리는 모테트 연주회에 관객이 가득 차는 일이라고 본다.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방문하던 날은 빗방울이 조금씩 흩뿌리기까지 했다.)
성토마스교회는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서 가면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바흐 음반과 책에서 익히 보던 건물이었다.
교회의 광장에는 바흐의 동상이 말끔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바흐 당시와는 실내의 구조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다고는 하나
교회는 온통 바흐와 관련된 시설로 채워져 있었다.
교회 바깥의 한쪽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고,
교회 2층에는 바흐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의 유리창들은 스테인트 글라스로 되어 있었는데
정중앙에는 바로 바흐의 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하나 건너에는 멘델스존의 상이 있었으나
그것은 오로지 바흐를 발굴해 냈다는 공로를 인정 받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제단이 있는 곳의 바닥에는 바흐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그 무덤에 대한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시적인 것들만 바흐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다.
오후 세시의 모테트 연주회나 7시반의 오라토리오 연주회는
바흐의 작품들이 주요 레파토리를 이루고 있었다.
말하자면 성토마스교회는 바흐 일색이었다.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바흐 때문에 유명해졌고,
그로 인해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흐가 생전에 이 교회의 환대를 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후에 바흐는 교회 음악계에서 까맣게 잊혀졌었고,
생전에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서 교회 지도자들과
나아가서는 시의 지도자들과 늘 부딪히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