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이야기

졸음의 유전

써니케이 2009. 5. 30. 20:01

요즘에 잘 존다. 교회 의자에만 앉으면 졸린다.
오늘은 졸지 않아야지, 않아야지 애를 써 보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졸고 있다.
찬양대석이 교인들의 시야에 자리 잡고 있으니, 조는 것은 사실 금물이다. 절대 졸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존다.
졸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전날 가급적 일찍 잠자리에 들어 본다.
그래도 몸의 일과표는 쉽게 바뀌지 않기에 어쨌거나 취침 시간을 당기기 힘들다.
그러면 아침에라도 좀 여유 있게 일어나면 좋을 텐데 묘하게도 늦게 일어나도 되는 날에는 유난히 일찍도 일어난다.
전날에는 힘든 일은 피한다. 말하자면 졸릴 만한 인자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한 동안은 혹시나 해서 혈압 약을 삼가기도 했다. 그 약이 뭔가 몸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졸린다.
목사님의 설교가 스타일이 비교적 차분한 편이라서, 나에게 오는 졸음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이제는 혹 졸더라도 들키지 않을 방책을 강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체 내 졸림의 근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굳이 들이대자면 '졸음신(神)의 강림'을 말할 수 있겠다.
이 졸음신은 종류로 따지자면 나에게는 조상신(祖上神)의 일종이다.
아버지는 어느 연세에 이르렀을 무렵부터는 잘 조셨다.
예배당에서, 특히 저녁 예배시간에는 졸지 않는 날이 없었다.
고개를 꾸벅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뒤쪽으로 잦히는 것은 말아야 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수긍하지 않는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꼭 뒤쪽으로 꾸벅였고, 자신의 과도한 몸짓에 의해 정신이 버쩍 드는 순간에는, ‘에헴!’하면서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는 꼭(!) 뒤를 돌아다본다.
마치, ‘졸음의 주인공이 바로 나요!’ 하는 듯이 말이다.

아버지는 왜 조셨을까?
내 졸음의 근원도 잘 모르는데, 이미 저 세상에서 영면(永眠)을 취하고 계시는 분의 조는 이유를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사실 교회 예배 시간 뿐 아니라, 어디서나 앉기만 하면 조셨다.
목사님의 설교를 부정하기 위해서 조는 것은 절대 아니셨다.
아버지는 정말 바지런하셨다. 늘 움직이시는 분이셨다.
농사를 지으셨다면 ‘농한기’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버리셨을 분이다.
남의 땅까지 빌려가면서 감자 농사며, 산두(밭벼) 농사며, 그리고는 결정적으로는 감초 농사까지 ‘땅과 땀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며 쉴 틈 없이 일하셨다.
이것저것 다 망해 버리고 나서는 남의 집 연탄보일러를 설치하러 다니랴, 교회에 상이라도 나면 경조부장으로서 염습이며, 입관이며, 출상을 지도하시랴 정말 분주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잠의 축복을 주셨던 것이다.

장로님이 예배 시간에 조시는 것은 아무래도 덕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정말 잘 주무시는 일로 본다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의 범위 안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믿고 있다.

 

그럼 나는 왜 존다는 말인가?

나도 아버지처럼 별로 쉴 줄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업종은 판이하다. 아버지는 주로 육체노동이셨다면, 나는 정신근로 쪽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인가?
아버지에게는 정말 잠이 필요하셨고,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백년의 피로가 몸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조금씩 나타나는 것인가?
아니면 졸음도 유전에 의한 현상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결론을 내기로 하자.
다만 이게 고비를 넘기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질병이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