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6

졸음의 유전

요즘에 잘 존다. 교회 의자에만 앉으면 졸린다. 오늘은 졸지 않아야지, 않아야지 애를 써 보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졸고 있다. 찬양대석이 교인들의 시야에 자리 잡고 있으니, 조는 것은 사실 금물이다. 절대 졸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존다. 졸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전날 가급적 일찍 잠자리에 들어 본다. 그래도 몸의 일과표는 쉽게 바뀌지 않기에 어쨌거나 취침 시간을 당기기 힘들다. 그러면 아침에라도 좀 여유 있게 일어나면 좋을 텐데 묘하게도 늦게 일어나도 되는 날에는 유난히 일찍도 일어난다. 전날에는 힘든 일은 피한다. 말하자면 졸릴 만한 인자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한 동안은 혹시나 해서 혈압 약을 삼가기도 했다. 그 약이 뭔가 몸의 활력을 떨어뜨리..

추억 이야기 2009.05.30

어떤 노인의 몸무게

한 보름 전쯤의 일이다. 저녁에 늘 하던대로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 산책이라기보다는 한 시간 정도 열심히 걷는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보통 효자촌 우리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율동공원으로 가서 역시 2km 정도 되는 호수 주변 산책로를 돌아오곤 했는데, 그날은 추워서 그 반대방향인 서현역 쪽으로 가기로 했다. 시범단지 쪽으로 해서 우성아파트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서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이상한 느낌에 다가가서 어디 가시느냐고 물으니 횡단보도를 건네달라는 말씀을 하신다. 노인은 발걸음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었고, 말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원래 곱상하던 분 같은데 얼굴엔 검버섯이 피었고 피부에 진기가 빠져버린 분이었다. 체구도 자그..

추억 이야기 2007.12.04

아버지의 시계

아버지의 시계는 다른 식구들 시계보다 늘 30분쯤 일찍 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주일날 예배시간이 11시라면, 아버지는 10시반 쯤에 교회에 도착해 계신다. 그냥 혼자만 일찍 가시면 좋겠는데, 온 식구들을 채근하신다. "아버지, 여기서 교회까지 10분이면 충분히 가거든요. 10시 40분에 출발해도 10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어요." 이런 항의는 아버지에게 안 통한다. 교회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다. 하긴 중간에 시위대라도 만나면 통제된 곳을 빙 돌아서 가야 하고, 지진이라도 날 것 같으면 119 구조대의 신세라도 져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우려와는 달리 내 50 평생에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여튼 주일날 아침이나, 등교 길에는 언제든 아버지와의 신경전이 펼..

추억 이야기 2007.07.29

아버지의 학력

요즘 현대미술 큐레이터를 하는 대학교수의 학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유명 영어 강사가 영국에서 석사를 한 것이 아니고, 그냥 한국에서 대학 중퇴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명 만화가인 이 모씨는 자신의 학력이 이미 알려진 것처럼 대학교 중퇴가 아니라 사실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학력, 학벌 위주 사회의 폐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냥 실력으로 평가 받는 사회였으면 그러한 학력 부풀리기나 위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조작과 속임수 등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학력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학생생활기록부의 부모 학력란에 아버지는 중졸, 어머니는 초졸로 적었다. 어머니는 정읍 작소(친정) 가까이에 있는 옹동국민학교를 나왔는데, 아버지의 학교 이름은 ..

추억 이야기 2007.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