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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소동

써니케이 2010. 7. 29. 10:23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대학원 2층 PC실과 복도에 말벌 10여 마리가 날고 있었다.

천장이나 벽쪽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집을 지으려는 행동 같았다.

PC실에는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하는데

그 공간을 말벌들이 함께 쓰자고 덤벼든 것이다.

 

나는 바로 교학실 직원들에게 연락을 해서 말벌 퇴치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적절한 전달의 수단과 통로만 있다면,

"얘들아, 이 공간은 입학 자격을 얻지 않은 존재는 사용할 수 없는 곳이란다."라고

좋게 타이르고, 그 대신 대학원 건물 바깥 쪽의 드넓은 세계에서 보금자리를 꾸미도록 권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도무지 나의 약간의 몸짓에도 과민반응이다. 공격하려고만 한다.

 

벌써 3년 전이든가, 나는 일차 이들과 큰 전쟁을 벌인 일이 있다.

어느날 처장실에 출근해서 슬리퍼로 갈아 신으려는 순간 나는 뭔가 발가락 끝에 따끔함을 느꼈다.

'무슨 바늘이 여기 들어 있나?' 하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슬리퍼로부터 말벌 한 마리가

튀쳐 나오며 2차 공격을 시도하였다. 나는 '아, 물렸구나!'고 직감하고서

곧 바로 나를 공격한 말벌을 응징하였다.

아무래도 내 발냄새에 뭔가 푸근함을 느낀 이 녀석이 슬리퍼 안에 컴컴한 공간에서

늦잠을 즐기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275mm의 커다란 물체를 위험을 느낀 나머지

자기의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 것이었다고 본다.

잠시 뒤에 물린 부위가 부어 오르고, 온몸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겨우겨우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서 응급 조치를 받아야만 했다.

 

말벌의 독은 보통 벌에 비해 500배나 강하다고 한다.

보통 꿀벌은 한번 침을 놓으면, 자신도 죽게 되어 있으나, 말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만일 이 독에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급사할 수도 있다 한다.

나는 다행히 며칠간의 항히스타민제 복용으로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뒤로 시설팀과 협조하여 대학원 건물 처마 밑에 있던 커다란 둥지들을 떼낼 수 밖에 없었다.

혹 동료 한 마리의 희생에 대한 보복으로 집단 공격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미안하였다.

 

아, 지상에서 어떤 존재는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아무 탈없이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존재가 또 다른 어떤 존재에게 말을 걸고, 대답을 듣고,

의견을 조정하고 하는 일이 가능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말벌이야 본래 공격적인 성품으로써 꿀벌에게나 사람에게나 환영 받지 못한 존재이기는 하나,

뭔가 그들에게도 삶의 이유와 생활의 방법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다른 존재와 모순이 되고, 충돌이 될 때에는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을 터인데,

아무래도 뱀이 인간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에덴동산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모순과 충돌 가운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