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자주 다니는 음반 가게에서 3장에 1만원 하는 DVD를 샀습니다.
요행히도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DVD가 있어서 그걸로 석장을 골랐습니다.
그 중에 John Denver가 들어 있습니다.
존은 우리 또래의 모든 사람들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수의 한 사람입니다.
요즈음은 가요계에도 한류(韓流)가 도도하게 흘러서
서양 노래에 대한 갈증이 전혀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 큰놈의 경우를 보면 에미넴 CD를 미국에서 산 뒤로
거의 서양 노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지금 큰놈 나이에는 서양 노래를 즐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통기타 가수의 포크송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몇 개는 번안한 노래였고, 서양 노래의 가사와 음률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존덴버, 사이먼&가펑클, 돈 맥클린 등이 내가 좋아했던 미국 가수들입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방송국에 근무한 덕으로 그들의 노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그들과도 친해졌습니다.
특히 75년도에 상영되었던 '선샤인(sunshine)'이란 영화는
존 덴버의 곡들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특별히 그와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의 노래 몇 개는 영어 가사를 그럭저럭 따라 부를 수 있는 정도도 되었고,
노래방의 단골 레파토리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집의 디스크 라이브러리에는 존 덴버의 음반들이
한 20장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2000년 말에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버지니아의 작은 대학도시에 터를 잡으면서
나는 바로 존 덴버의 노래 때문에도 약간은 더 설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유명한 'Take me home country road'이란 노래에
등장하는 몇몇 지명이 바로 내가 살던 도시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노래는 웨스트버지니아와 아팔래치아 산맥 부근을 배경으로 합니다.
거기에 세난도어강(Shenadoah River)이 있고,
불루릿지산(Blueridge Mountains)이 있었습니다.
사실 콜로라도 쪽이나 로키산맥이 존덴버의 노래를 즐기기에는 제격이겠으나,
생생한 지명이 곳곳에 등장하는 것으로는 오히려 이 노래가 더 적합합니다.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팔래치아 산맥의 능선을 따라 진행되는
블루릿지 하이웨이(Blueridge Highway)를 운전해 가면
정말 노래의 한 복판에 들어가는 셈입니다.
게다가 그 노래 중간에는 '고향'을 생각케 하는 가사도 있어서
잠시 동안이나마 고향을 그려보게도 되었습니다.
The radio reminds me of my home far away.
고향 방송국의 FM 전파가 그 멀리까지 올리가 없지요.
블랙스버그에 정착하면서 틈만 나면 그 작은 도시의 음반 가게를
뒤지곤 했습니다.
바로 존 덴버를 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종업원들에게 짧은 영어로 John Denver를 물어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그냥 'no(없다)'였습니다.
하, 이것 참!
미국에 존 덴버가 없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인근의 약간 큰 도시에 갈 때마다
음반 가게를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J' 줄에도 'D' 줄에도 그의 음반은
한 장도 안 보였습니다.
모두 30장이나 나왔다는데, 정말 한 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Bestbuy의 종업원은 나를 다른 영역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그 쪽에는 전집류의 CD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존 덴버의 선집 10장 짜리가 곱게 모셔져 있었습니다.
나는 두 말 할 것 없이 그걸 샀습니다.
한두 장이 아니라 10장이 되었습니다.
값도 비교적 저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CD 값이 비쌉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의
음악 애호가들이 한국에 와서 음반을 사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 열 장은 CD 매거진에 차곡차곡 넣고,
자동차에서 당장에 틀었습니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Today, Calypso, Leaving on A Jet Plane, Poems, Prayers and Promises, My Sweet Lady 등등..
존 덴버는 1997년 10월 12일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가 몰던 자가용 비행기가 캘리포니아 해안의 한 비행장을 이륙한 직후에
연료 문제로 추락한 것입니다.
그의 음반들이 아카이브 쪽으로 옮겨진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달콤하고, 우아한 기타 음률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음악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1977년부터 그가 살던 콜로라도주의 계관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노래했고,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찬양했습니다.
시골 출신이면서, 서정적 세계관의 전도사였습니다.
그를 '지구의 시인(The Poet For the Planet)', '어머니인 자연의 아들(Mother Nature's Son)',
'노래의 최고 친구(A Song's Best Friend)'라고 부르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여러 시간을 운전해 가야 하는 미국의 고속도로 여행에서
존 덴버는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주었습니다.
그리 고달프지는 않았지만 타향살이의 정서와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이국의 낯선 풍경들이
존 덴버의 노래 속에서 전혀 거침새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척 익숙한 느낌이 되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그 열 장의 CD가 어느 곳에서 제작되었는지를 말입니다.
Made in Korea
그 선집의 케이스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My purpose in performing is to communicate the joy
I experience in living
이번에 산 존 덴더 DVD(John Denver, a Portrait)의
커버에 적혀 있는 문구입니다.
"나는 살면서 경험하는 기쁨을 서로 나누기 위해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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