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아름다운가☆

삼십 년도 넘은 노래

써니케이 2006. 11. 6. 23:31

오늘 찬양곡으로 "내 마음 정결케 하소서"란 노래를 불렀다.

익히 아는 곳이라 악보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것이 고등부에서 찬양대를 할 때였으니까

30년도 훨씬 넘었다.

그 사이에도 몇 차례 찬양곡으로 부른 적이 있고,

내가 지휘를 해 본 일도 있으므로 노래를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0년이 넘었지만 처음 이 노래를 불렀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고등학생 시절의 여린 감성을 자극할 만한 노래였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번갈아 '내 마음 정결케 하소서'라고 호소하고 나면,

'나를 쫓아내지 마옵소서'라고 강렬한 톤의 유니즌(제창)이 이어진다.

분위기를 바꾸어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 이루어지면

'나를 붙드소서'라고 다시 간절하게 애원한다.

대단원으로 '많은 사람을 주 앞에 인도하겠다'는 각오를 절정으로 올리고

다시 한번 주제를 회상하는 것으로 곡이 마무리된다.

 

그리 빠르지 않은 변성기를 갓 지난 무렵이었고,

합창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던 고등학생들이었지만

오히려 그 애띤 목소리의 호소력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곡 자체의 성격도 어른들의 목소리보다는 젊은이의 신선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일요일 아침의, 아니 주일 새벽의 서늘한 예배당은

우리 찬양대의 어린 감성으로 채워지곤 했다.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와는 상관 없이

그 찬양들은 예배당 반대쪽의 벽에 부딪힌 후에

어린 영혼들의 귓가에 다시 되돌아와

스스로를 전율케 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30년 전보다도 훨씬 잘 불렀다.

찬양대의 규모도 컸고, 경력들도 많은 대원들이었으며,

강약의 표현이나 여러 가지 음악적 처리도 아주 잘 되었다.

지휘자도, 대원들도 모두 다 만족스러워 했다.

나부터도 목소리에 윤기가 넘쳤다. 소리의 품질이 훨씬 좋아진 것도 틀림없었다.

(그 삼십 여년 전에 나는 호흡기에 중한 병을 앓고 있었다.

하도 기침을 해 대서, 목소리가 까칠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 삼십 년 전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 느꼈던, 그때 가슴 아렸던, 그때의 여리고 부드러운 감성은 아니었다.

 

과연 그러한 느낌과 감성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되살릴 수 없는 것일까?

아예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일까?

 

다음 삼십 년 후에 이 노래를 다시 부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때에 오늘의 감각과 느낌과 정서가

또 다시 아련한 추억이 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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