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선이가 누군가?"
김교선 교수님은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로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는 국문과3학년 남학생들에게 물어오셨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주의 일이었다.
"자넨가? 내 방에 한번 들르게."
나는 갑작스런 노교수님의 호출에 시험 본 것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이 되어 곧바로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뵈었다.
거기서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뜻밖의 일거리를 받았다.
문학잡지에 보내는 평론 원고를 정서하는 일이었다.
"자네가 글씨를 잘 쓰더군."
이유는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중간고사 시험지의 필기체를 마음에 두고 나를 징발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대학 4년은 비교적 편했다.
교수님들의 주문이 적지 않았고, 나의 납품에 만족들을 하셨으며, 보상은 학점으로 나왔던 것이다.
가령 앞의 김교선 선생님은 월간 [현대문학]에 보낼 평론의 정서를 맡기시곤 했는데, 뜻밖에도 그 내용을 기말고사 문제로 내셨다.
현역 소설가에 대한 평론이라 그 글을 읽지 않은, 읽었어도 다시 옮겨 적어본 적이 없는 친구들은 도무지 한 자도 적을 거리가 없었다.
하긴 고등학교 때에도 한문을 가르치시던 조두현 선생님의 한문 교재 정서 작업에 동원된 적이 있었고, 심지어 중학교 때에는 역시 한문 선생님이시던 김용세 선생님이 시험 문제 채점까지도 맡기시곤 했다.
그건 어쩌면 그 선생님들과 내가 거의 앞뒤집에 살았던 지리적 인접성 덕일 수도 있었으나, 하여튼 선생님들의 글씨 쓰는 심부름은 내가 대학원 다니고, 조교를 하는 동안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후임 조교들이 여간 곤욕을 치른 것이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경험으로 나는 이런 지론을 가지고 있다.
'글씨를 잘 써야 좋은 학점을 받는다'
아니, '글씨만 잘 써도 학점은 근사해진다'
이 지론은 내가 교수가 되어서도, 이제는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를 하고 채점을 하는 입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요즈음은 이처럼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차츰 필력이 쇠퇴하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가끔씩은 전산환경을 이용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예배 시간 같은 때에는 메모장에 시작품을 끄적거리기는 하지만 아마 그때 쓰는 글씨의 수준이라면 교수님들이 다시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뛰어난 컴퓨터 능력 때문에 다시 불려갈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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