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아버지의 글씨는 정확하고,꼼꼼하며, 균형이 잘 잡힌 것이고, 어머니의 글씨는 단아하고, 아담하며, 소박하다.
그에 비하면 내 서체는 좀 매끈한 편이다.
안진경보다는 왕휘치 서법의 흔적이 엿보인다.
글자 한 자 한 자의 형태보다는 문장에서의 조화를 더 추구하는 편이다.
사실 추구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런 조화가 이루어진다.
한 동안은 서예가를 꿈꾸기도 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현판 몇 개는 남겼을 법도 하고, 족자라도 꾸며 놓으면 달라는 사람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글 쓰는 것보다는 제법 돈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다.
글씨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쨌거나 다른 사람 특히 학생들의 글씨를 자주 접하면서, 나는 글씨가 인격이라는 생각을 비교적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사실 글씨를 잘 쓰는 것과 못 쓰는 것, 그런 것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획의 구성과 움직임의 형태가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성품과 교양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동안의 배움의 과정에서 판서를 하시는 선생님들의 글씨는 거의 틀림없이 그분들의 성품과 연결되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내 글씨에는 내 인격이 묻어난다고 자평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냐는 그냥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 누구라도 그렇듯이 졸업생들은 이력서를 몇 통씩은 작성하게 된다.
지금은 컴퓨터로 작성해서 프린터로 출력하고 겨우 친필 사인을 하거나 날인을 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과거에는 소위 '자필 이력서'라는 것을 철저하게 요구했다.
말하자면 지원자의 글씨에는 무언가 그 사람을 말해 주는 어떤 것이 있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졸업반이었지만 복학생 형 한 분이 나에게 자기 이력서를 써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군산에 있는 모 여고 국어교사 자리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력서는 그렇게 대필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거절했다.
그래도 선배는 강력하게, 그러면서도 나의 필력을 치켜세우면서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기도 했지만 이후의 모든 사태의 책임은 오직 선배에게 있다는 말을 던지고 순순히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선배는 주말을 보내고 돌아와서 낙심한 표정으로 보고를 했다.
그는 최종 면접까지 올랐단다.
이것저것 물음에 답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단다.
"이 이력서는 본인이 작성한 것인가요?"
선배는 양심에 찔려 진실을 말했다 한다.
그 선배의 글씨도 평균 이상이었지만, 유난히 눈에 들어온 글씨가 교장 선생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진실이 밝혀졌고, 선배는 탈락했다.
국어 선생에게는 판서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판서 능력보다 더 중요한 진실성에서 이 선배는 합격권에 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 선배는 그 이후 자신이 직접 쓴 이력서로써 자기 집 근처의 학교에 손쉽게 취직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농촌 지역이지만 수능 최고 득점자를 탄생케 한 학교의 교감 선생님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글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필기본을 통해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하도록 권한다.
진지하고도 꾸준한 글쓰기 훈련은 곧 바로 인격 훈련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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