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남섬의 대표적 관광지인 밀포드 사운드란 곳에서 유람선을 탔다.
피요르드 해안을 따라서 두 시간 가까지 왕복하는 배다.
갑판에 나왔다가 올려다보니 조종실이 보였다.
위로 올라가니 조종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문간에 기대서서 선장의 움직임을 보기도 했고,
앞에 놓인 계기판과 기계장치를을 지켜보기도 했으며,
그 옆의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엿들기도 했다.
선장이 나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인사를 건넨다.
몇 마디 답변을 하니,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하니, 대번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그러더니 나더러 이러는 것이냐?
"Are you a tour guide?'
왜? 내가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니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
그냥 한국에서 배웠고, 미국에 객원교수로 1년 있었다고 했다.
선장과 그 일행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내심으로, 그거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의
여유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석사과정에 들어온 우즈베키스탄 남학생의 한국어 실력을 무지무지 칭찬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친구도 오류가 많다.
외국인 학생으로 잘 할 뿐이다.
어떻게 공부해야 영어를 잘 하게 될 수 있을까?
영어는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외국어다.
그것도 제1 외국어다. 안 배울 수 없다.
내가 내릴 결론도 바로 영어가 외국어라는 데 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배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일반적인 언어 능력의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후천적인 경험이 한국어 사회에서 이루어지면 한국어가 모국어가 되고,
영어 언중들에게 둘러싸이면 영어가 모국어가 된다.
드물게는 이중언어 능력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언어환경에 노출될 때 그렇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어떤 하나가 주요 언어가 되고,
나머지는 부차적 언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학부모에게 모국어의 능력을 먼저 길러주라고 강조한다.
모국어로써 언어 능력을 신장시키지 않고서는
결코 외국어에서 성공할 수 없다.
내 밑에서 석사논문을 쓰는 중국 학생 중에는 나한테 이런 비판을 받는 학생이 있다.
네가, 중국어로 같은 내용을 썼다고 했을 때,
그 논문이 설득력이 있겠느냐고 말이다.
중국어로 논리가 정연하게 설득력 있게 서술하지 못한다면,
한국어를 아무리 잘 배운다 하더라도 결코 좋은 논문을 쓸 수가 없다.
모국어의 기초를 든든히 하지 않고서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언어 능력의 네 분야(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능력은 각각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모국어에서의 차이가 외국어에서의 차이로 그대로 전이된다.
우리 집의 경우를 예로 들자.
큰아들은 말이 빨랐다. 그러나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둘째아들은 말이 늦었지만,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큰아들이 중1때, 둘째가 초4때 미국에 갔다.
미국에서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보니
그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랄 때의 과정을 압축해 놓은 것과 똑같았다.
여름방학에 캠프에 보냈더니, 큰놈은 나올 때 혀가 꼬부라져 있었으나
둘째는 여전히 한국식 영어 발음의 수준이었다.
말할 때에는 머릿 속에서 한국어를 먼저 생각하고
그걸 번역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둘째의 읽기 능력은 일취월장했고,
쓰기 능력은 선생님을 감탄시킬 정도로(Excellent!) 멋지게 발휘되었다.
나는 이때 모국어 능력이 외국어 습득 능력으로 전이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학생들을 데리고 한국문학을 강의하면서
나의 판단이 맞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가진다.
(이 글을 국어선생이 국어선생 입장에서 쓴 것은 맞다.
이제 다음 글들을 읽으시면서 무슨 전공이기주의로 쓴 것은 아님을 이해 바란다.
다음에는 영어 제대로 발음하기의 비법,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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