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등학교 반창회(졸업할 때 3학년 2반이었던 친구들의 모임)의 사무총장인 나종호라는 친구가
글을 보내왔다. 그 글에 대한 답장을 전체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보냈다.
우리 총장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닭을 키워보기는 했으나, 알을 부화시켜 보지는 않아서
줄탁동기의 비밀한 순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옛사람들이 자연과 얼마나 섬세한 관계 속에서 지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닭과 관련해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말도 있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도 있고,
‘닭 길러 족제비 좋은 일 시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늘 새롭고도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은 소의 해인데 닭 얘기가 길어졌군요.
아 맞다, ‘소 닭 보듯 한다’ 이런 말도 있지요.
‘줄탁동기’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생각되는 바가 있어서 덧붙입니다.
우선 이 말의 한자어가 궁금해서 한자 관련 자료를 뒤졌더니
줄탁동시(啐啄同時) 혹은 줄탁지기(啐啄之機)라는 표현은 많은데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표현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줄탁동시가 적절한 표현인 듯합니다.
그러면 병아리와 어미 닭의 행동 중에 먼저 일어나는 게 뭘까요?
동시(同時)라고는 되어 있지만 우리 총장님의 해설이나
다른 자료를 보아도 먼저 병아리가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병아리와 어미 닭의 관계는 인간 세상의 여러 관계로 유추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식-부모, 제자-스승, 부하-상사, 인간-하나님 등이지요.
나는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돌이켜 보니,
나 역시 학생들이 신호를 먼저 보내기를 기다리는 범주에 듭니다.
선생의 양심으로 학생의 신호에 부응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학생이라고는 하여도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학생이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선생이 먼저 신호를 보내면
부작용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 학생이 선생의 신호에 부응하여 자기도 껍질을 쪼기 시작하면 문제가 없는데,
선생이 껍질을 다 깨뜨려 줄 때까지 기다리던 학생은 결국에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도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스스로 신호 처리를 적절하게 했던가를 되새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해에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적절한 그리고 타이밍을 잘 맞춘 신호 처리를 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총장님의 말씀처럼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품고 있는 것들로부터
미세한 소곤거림이라도 잘 들어보려 합니다.
새로운 한 해에 친구들과 하는 일과 가정에 하늘의 복이 넘쳐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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