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무지 무얼 버릴 줄을 모른다.
산 것이든 얻은 것이든 혹 주은 것이든 버리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집이나 연구실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중에는 허섭스레기 같은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20년 이상을 컴퓨터와 더불어 지내다 보니 컴퓨터나 컴퓨터 부품과 관련된 것들이 상당수다.
자그마한 나사못은 물론이고, 온갖 케이블이 구비되어 있다.
그 중에는 110v 시대의 전원케이블도 있고, SCSI 케이블이며, LED 연결용 케이블도 있다.
아니 일일이 이름을 대기가 힘들 정도로 많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당연히 안사람의 단골 지적사항이다.
내 변명은, 잘 보관해 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는 말 뿐이다.
그런 일이 일년에 한두 번 일어나기는 하지만 아직도 부름을 받기 원하는 온갖 잡동사니는 아직도 엄청나다.
이러다가 나중에 적절한 공간이 생기면 컴퓨터 박물관 혹은 케이블 박물관이라도 하나 세워볼 심산이다.
내가 잘 아는 목사님 한 분은 6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버리라고 충고하신다.
정말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가령 책 같은 것은 평생 한 번 펼쳐보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지도한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증정한 학위논문 같은 것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나중에는 나에게 그 책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때는 꼭 필요한 곳에 보낼 각오가 되어 있다.
뭐든지 버려지는 것은 너무나도 아깝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서는 버리는 일 자체가 죄악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나는 뭔가 너무나도 아쉬운 어린 시절을 겪었던 것 같다.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번다한 취미와 구질구질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에 우리 가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 생활을 할 때도, 아파트 단지에 버려지는 생활용품을 거두어 두었다가 새로 오는 한국인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매트리스 같은 것은 1년 반 사는 동안 서너 번 바뀐 것 같다.
폐기장에서 허름한 물건을 주워 오는 행동을 가리켜 '확보'라는 아주 중립적인 용어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미련한 미련(未練)'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벼룩시장 같은 것이라도 운영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값은 고하 간에 내가 쓰던 물건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적지 않이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추억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영역은 하늘에 가까웠다 (0) | 2009.02.17 |
---|---|
'줄탁동기'에 대하여 (0) | 2008.12.26 |
수학여행 사진 한 장 (0) | 2008.03.24 |
배산에 소풍 가서 (0) | 2008.03.24 |
신광철물점 주인, 돌아가시다 (0) | 2008.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