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주에 다녀오는 길에 상행선 천안휴게소에 들렀다.
전주에서 분당까지 자가운전으로 올 때면, 천안에서 한번 쉴 필요가 있다.
민생고도 해결하고, 호도과자도 주문하고, 음료수도 한 병 사고, 차들로 붐빌 남은 길에 대한 준비도 하고…….
할 일이 제법 많다.
하여튼 일단 화장실에 들러 식당 건물 안에 있는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러 들어가는 길이었다.
여닫이 유리 출입문 앞에서 버릇처럼 잠시 탐색을 해본다.
이게 미는 것인가, 당기는 것인가? 나는 뜻하지 않게 ‘퇴고(推敲)’를 한다.
(퇴고란 밀다(推)와 두드리다(敲)란 말을 이어서 만들 말로서, 원고를 쓰고 적절한 표현을 찾는 교열 작업을 뜻한다.)
‘당기시오’ 그렇군, 당기란다.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문이므로 양편에서 서로 주의만 한다면 당기거나 밀거나 큰 문제는 없다.
더러는 구조상 한 방향으로만 열리도록 만들어놓은 것도 있어서 밀지, 당길지를 사전에 검토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더욱이 반대편에 사람이 있고, 나보다 문에서 멀리 있다면 내가 밀어도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쪽으로 당기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다.
내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갔다면 그 문을 잠깐 잡아서, 상대방이 문을 빠져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눈빛으로 생각을 교환하고, 가벼운 눈인사로 ‘고맙소!’, ‘뭘요!’ 이런 표시까지 한다면, 최고의 소통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주고 있었는데도, 그냥 쑥 지나가 버린다면, ‘참 고약한 친구로군, 쯧!’ 이런 생각도 든다.
휴게소 가게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한 병 사 가지고 나오는 길에 아까 했던 퇴고를 복습한다.
‘아니, 이런!’
기대했던 문구는 '미시오'였는데, 이쪽에도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저 바깥쪽이 ‘당기시오’라면, 안쪽에는 ‘미시오’라 해 놓는 것이 정답 아닐까?
하긴 언제든 서로 당기면 상대방이 졸지에 출입문에 부딪는 일은 없을 터이니,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동시에 양쪽에서 서로 당긴다면, 어찌 될까?
어찌 되긴…….
힘 센 쪽이 이기겠지, 하하.
그렇지만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다.
서로 잡아당기다가 한쪽이 용을 쓰고 있는데, 반대쪽이 양보하거나 다른 문으로 들어가려는 차원에서 갑자기 손을 놓아버린다면, 힘의 불균형 때문에 용을 쓰던 사람이 뒤로 휘우뚱 넘어질 경우 말이다.
그러니, 천안휴게소여!
한쪽이 당기고, 다른쪽이 미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시라.
‘퇴퇴’나 ‘고고’보다 ‘퇴고’가 적절하지 않겠는가?
아니 아니, 문에 붙인 그 표찰을 다 떼내면 어떠시겠소?
그렇게 되면 유리문을 두고 손님들이 서로 눈빛으로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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