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글과 말

여기 직원분이세요? 뜻밖의 질문.

써니케이 2017. 9. 7. 15:43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갔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구내식당에서의 뜻밖의 질문은 25년 전에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종류가 약간 다릅니다. 카페테리아라서 식판에 먹을 것을 원하는 만큼 담아가지고 마지막에 배식대에서 국을 받으면 됩니다. 오늘을 흑미밥에, 자장 소스에, 햄 감자 볶음에, 오징어 고추장 볶음에 노란 단무지까지 비교적 근사한 메뉴였습니다. 나는 한껏 담아 가지고 국을 받으러 갔습니다. 이때 배식하던 영양사분이 나에게 그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 직원분이세요?"

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맞아요. 여기 교수예요. 내가 식당에 잘 나오지 않으니까..."
오늘 따라 목이 잠겨서 소리도 잘 안 나왔습니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수염도 밀지 않은 허연 영감이, 수북이 음식을 쌓아 가지고 앞에 나타났는데, 통 보지 못한 사람이라서 확인해 본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그 영양사는 처음 보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번 여름에 식당 운영업체가 바뀌었고, 방학때는 출근을 안 하는 때도 많지만 아들도 오고 해서 그럭저럭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으니까, 그리고도 저번 업체가 연구원 영업을 그만두려고 했는지 음식이 통 신통치 않아서 그냥 개인적으로 해결을 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연구원에서 25년째를 살고 있고, 수차례 보직도 했고, 사실 교수직 일련번호 중 내가 가장 빠른데, 그런 나를 못 알아보다니... 쩝
25년 전에는 말하자면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에는 아침 저녁까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나의 신분이 궁금했던지, 어떤 대학원생이 벼르고 별러서 어느날 내 앞에 와서는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하고 내 염장을 지르더니, (아니 사실은 질문을 했던 그 친구가 더 멋쩍었을 것이다.) 오늘은 직원이냐고 묻는 영양사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 말인 즉, 직원이 아니면 점심값을 따로 계산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연구원 교직원은 월급에서 급식비로 8만원을 일괄 공제합니다. 구내식당에 가거나 가지 않거나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본 식수가 모자라서 단체급식에 참여할 업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경우에는 반타작도 못합니다. 식비를 고스란히 헌납하는 달도 있습니다.
그건 여기서 더 말해봐야 소용없으니,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직원인가? 그렇습니다. 신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봉급도 타고, 일도 합니다. 식당에만 잘 나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면 직원답게 일하고 있는가, 월급에 부끄럽지 않게 연구, 교육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솔직히 저 영양사 앞에서처럼, 그리 떳떳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외부분들이 평가를 할 때, "그래 김교수는 제밥값을 하고 있어!"라는 평가를 받아야겠습니다. 앞으로 4년 반이 남았는데, 정년 전에 국가로부터 입은 은혜를 잘 갚아야겠습니다.
뜻밖에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질문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정년을 하더라도 밥은 연구원 식당에서 먹을까 싶습니다. 4천원에 이렇게 고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양사 분에게 퇴식을 할 때 이렇게 말해 두었습니다.
"나 좀 잘 기억해 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