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착실(着實)했었다. 김태학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알아보셨다. 그래서 맡기신 일이 자전거 당번이었다. 선생님은 자전거를 교실까지 끌고 오셨다. 종례를 마치면 나는 그 자전거를 현관 앞까지 가지고 내려왔다. 5,6학년 때 사용하던 건물의 중간에는 계단이 아니라 요즘 식으로 말하면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었다. 선생님이 잔무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걸레로 자전거를 닦아놓기도 했다. 가끔은 자전거를 선생님 댁까지 옮겨 놓기도 했다. 저녁 식사 약속이 있는 날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건 신나는 일이었다. 마동 쯤으로 기억하는데, 그곳까지 아마 20분 남짓 걸렸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왜 자전거를 교실로 가져왔으며, 나는 왜 그 자전거 배달에 신이 났을까? 대답은 한 가지다. 그 자전거가 일제(made in Japan)였던 것이다. 혼모노(本物)! 진짜 일제였다. 스텐레스가 번쩍번쩍 반사광을 만들어 내는 멋진 자전거였고, 당시 한국 자전거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무엇보다도, 이 자전거에는 기어가 달려 있었다. 아마도 3단쯤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에 있던 짐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현관에서 우두커니 자전거를 지키고 있노라면 친구들은 하나씩 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그 중에 어둑한 통로를 다소곳 걸어 내려오던 P의 모습이 기억 난다. P는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내 시선이 비켜갔다. P는 무슨 느낌을 가졌을까? 선생님처럼 착실하다고 생각했을까? 바보 같다고 비웃었을까? 그냥 그때, “야! 타!” 그러고는 <스팅(Sting)>의 주인공들마냥 냅다 시내를 질주했더라면 어땠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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