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제재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이고,
더군다나 여주인공 전도연 씨가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라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생각보다는 예매하기가 쉬웠고, 주말인데도 막상 자리가 1/3쯤 비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몇 가지 전영법과 상징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걸 읽어 내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습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전도연의 아들 준이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잠시 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아이의 유괴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앞질러 암시합니다.
다른 하나는 전도연이 피아노학원을 개업하고 주변에 개업 떡을 돌리는 장면에서
이웃에 있는 작은 옷가게에 가서, 나오는 길에 옷가게 주인한테
가게 인테리어를 바꾸면 장사가 잘 될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작품이 끝날 무렵에 다시 그 가게에 들렀을 때
가게 주인은 전도연의 권유대로 인테리어를 바꿨더니
손님들이 많아졌고 장사가 잘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작품의 전개와는 긴밀한 관계는 없지만, 어쩌면 오늘날 교회의
현상을 지적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외면을 치장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고,
(작품속의 교회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비본질적인 데 관심을 두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그러니까요.
작품은 무난하게 전개됩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품에 서스펜스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카메라는 거의 전적으로 관찰자적 시점만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 등에 대해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설명도 없으니, 전도연이 왜 아들을 죽인 사람을 면회하고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느냐에 대해서
(영화 속의 다른 인물들처럼)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증언을 통해서 변화의 원인이 노출되기는 합니다만
외국영화 같으면 아마도 정신과 의사 같은 사람을 내레이터로 등장시켜서
서스펜스도 불러 일으키며 관객의 이해도 도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튼 이창동 감독의 고집스런 일관적 태도는 나름대로 의미는 있습니다.
드러냄보다는 감춤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여주인공인 전도연의 연기력이었습니다.
야,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에서 목의 힘줄이 굵어지고
표정의 변화가 극에서 극을 오가는 것은
전도연 아니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의미심장하기는 하면서도
사실상 진부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다면 ~~~'
'왜 죄인은 현실에서 고통을 받지 않는가?' 등등의 질문은
아주 오래 된 질문들이죠.
그러나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사람들의 신앙을 시험하는 단골 메뉴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기독교 쪽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를 유괴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주인공의 고통은
하나님이 당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정말 애매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 작품에서 기독교는 전혀 폄하 당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목사님들과 그들의 설명은
그냥 평범합니다.
뭔가 비신자들에게나 보수적인 신앙인들에게도
좀 거시기한 장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카메라는 절대로 관객의 비웃음을 유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결론은 한번 볼 만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를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햇빛은 최종 도달 지점에야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일 뿐이요,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말처럼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그래서 숨겨진 햇빛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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