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오만과 편견, 그리고 인내

써니케이 2006. 10. 5. 13:12

[오만과 편견]에 대한 단상


이 영화를 보면서 인물 캐스팅이 특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배우는 한 사람도 없고(사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배우 자체가 없지만), 지금 그 배우들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원작자의 머릿속에 있던 인물의 이미지와 아주 똑같거나 그보다 더 진실감이 있어 보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배우의 현존이 주는 힘을 크게 느낀 작품이었다. 특히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시 역을 맡았던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했다.

대부분의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행동의 굴곡을 가져오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 장치는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오만’과 ‘편견’이다. 그 두 가지 심리적, 지적 태도의 저변에 놓인 것은 바로 ‘오해’다. 문제는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소통의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오해가 풀리고 행동의 추이는 큰 전환을 이룬다.

그러나 그 오해가 풀리고 해피엔딩에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다시의 ‘인내심’이다. 다시는 처음 영화에 등장할 때 무슨 수수께끼의 인물처럼 보인다. 동네 무도회의 자리에서 약간의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 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그 무도회의 주요한 손님이었는데도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는 부잣집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는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큰딸의 태도를 의심하여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친구에게 그녀를 포기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그의 차갑게 보이는 인상과 이러한 오만한 행동은 결국 오해였음을 관객들도 다시와 함께 알게 된다. 그는 오랜 기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오해를 불식하고자 하는 어떤 뚜렷한 행동도 없이 꾸준히 엘리자베스의 가정을 위한 몇 가지 일을 행한다. 물론 그것은 무작정한 배려는 아니었다. 다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그의 행동의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었던 것이다. 만일 다시의 인내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되었을까는 특별히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인물 간의 소통을 위한 체계도 없었고, 이를 위해 활동하는 보조적 인물도 없으니 그냥 다시의 선행은 역사와 더불어 사라져갈 뿐이었을 것이다. 다시 자신도 그렇고 작가도 위험한 도박을 벌인 셈이었다. 다만 어떻게 보면 우연히 철없는 막내 동생의 보고에 의해 그의 선행이 알려지고 상황이 급변된다.

결국 다시는 세 가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큰딸, 둘째 딸, 그리고 막내딸의 결혼이 그의 활동에 의해 아름답게 맺어진다. 그 절대적 필요 충분 조건은 바로 엘리자베스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애정이다. 그의 재력이나 인품은 오로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덕목이 바로 그 인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