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삼계탕 얘기

써니케이 2010. 8. 7. 14:29

내 어렸을 때 기억으로, 닭고기도 귀했다.

집에서 닭을 키우기도 했지만, 고기 용도가 아니라 계란 용도로 키웠다.

그러다가 집에 행사가 있을 때나, 큰 손님이 오실 때 쯤에야 고기 용도가 된다.

한국 속담에 "사위 온다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장모님이 사위 아끼는 마음에 애지중지 키우던 소중한 씨암탉(병아리 까려고 기르는 암탉)을

잡는다는 것인데, 이처럼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용도로 닭을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닭을 잡으면 털을 뽑아서 그냥 맹물에 푹 삶아서,

고기는 그래도 손님 상에 올려두고 나머지 식구들은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든지,

죽을 끓여 먹든지 한다. 한 마리만 잡아도 온 식구들이 닭맛을 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흔히 닭도리탕이라고 불리는 닭볶음은 우리 고향 근처에서는 본 일이 없다.

가정에서는 거의 대부분 백숙으로 먹었다.)

 

사실 닭은 이러한 음식 용도보다도 약재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다.

삼복 더위에 많이 먹는 삼계탕도 일종의 약이라고 할 만하다.

인삼과 황기 같은 약재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거기에 밤, 대추, 은행이 포함되며,

파와 마늘이 듬뿍 들어간다. 그리고 찹쌀을 닭의 복부에 우겨넣으면

온갖 재료들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진국인 최고의 국물이 나온다.

그냥 약재만으로 탕약을 달여 먹어도 효과가 있겠지만,

아마도 닭고기의 특별한 성질이 약의 힘을 배가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른 한약재들도 닭고기와 함께 달여서 먹는 일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옻 같은 것은 독성이 심한 재료인데, 이것도 옻닭을 만들어 먹으면

특이 체질이 아닌 한 효과가 좋다고 한다.

 

분당에서는 서현동 먹자골목 입구에 있는 '고려영양삼계탕'이 최고다.

일년 365일은 삼계탕과 전기구기 통닭만 파는 이 집에는 언제나 사람이 들끓는다.

맛도 좋지만 품질이 일정하여, 특히 손님 모시고 가기에 좋은 집이다.

(요즘 수내동 쪽에 생긴 '개성삼계탕'이 좋다고 하는데 아직 가보진 못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그 집으로 모시고 가기도 한다.

외국에서도 한국의 고려인삼을 귀한 약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삼계탕 대접만큼 효과가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지난 번 여름 휴가 때에는 경상북도 영주에 가서 특별한 삼계탕을 먹었다.

영주 근교에 풍기라는 곳이 있는데, 풍기의 특산은 소백산 자락에서 나는 인삼이다.

그래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풍기 인삼을 넣은 삼계탕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풍기삼계탕'을 내비게이션에 목표지점으로 넣고, 겨우 겨우 찾아가 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초복날이어서 손님들이 엄청 밀려닥치고 있었다.

한 40분을 기다린 끝에 삼계탕 맛을 볼 수 있었는데,

맛으로 치나, 크기로 치나 서현동 고려영양삼계탕보다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격도 1만원이니, 서현동보다 2천원이 쌌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지만 그럭저럭 잘 견디고 있는 것은

아마도 풍기삼계탕 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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