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도시에 대한 평가

써니케이 2012. 3. 22. 07:20

가끔씩 어느 도시가 살기 좋은가, 어느 도시의 물가가 비싼가 하는 평가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곤 합니다.

서울은 물가 비싸기로 세계 상위권이라는 둥,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분당이라는 둥 하는 보도 말입니다.

유럽에 와서 이쪽 저쪽 여행을 하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그러한 도시 평가의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부다페스트가 좋은지, 비엔나가 좋은지, 프라하가 좋은지, 부카레스트가 좋은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이 평가를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동유럽 국가는 대체로 가 보았는데, 체코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적지 않고, 또 나머지 도시들에 대한 체험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지만

체코의 프라하는 일단 잠정적으로라도 내가 동유럽 도시의 순서를 정해 볼 수 있는 필수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뭐 다른 도시도 많지만,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유명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

수도만 비교해 보더라도 대체로 그 나라의 특성도 알 수 있으리라는 가정을 해 봅니다.


그런데, 저울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나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헝가리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부다페스트를 최고 도시라고 우기고 싶거든요.

사실 여러 해 전에 비엔나를 거쳐서 부다페스트에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만으로는 그리 높은 평점을 주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한 부다페스트는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성 이스트반 성당의 외관이 극적으로 달라졌고, 도시의 풍경을 이루는 교통수단들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작 문제는 그 평가의 기준입니다.

동유럽의 유명 도시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떤 도시가 가장 동유럽 다운 도시인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겠죠.

서유럽을 현대문명의 산실이라고 생각한다면, 동유럽에서는 그 이전의 유럽문화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실제로 동유럽 국가의 경쟁력은 고층 빌딩과 첨단 시설에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나는 중세적인 외양을 어느 도시가 더 많이 갖추고 있는가를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생각합니다.

이 도시들이 전쟁의 참화를 겪었기 때문에 당연히 옛날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얼마나 옛날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했는지를 고려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세적 외양을 유지하기 위해 그 도시가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열심히 알아 봅니다.

특별한 이벤트의 시기는 제외하고, 평상시에 그 도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봅니다.

유럽의 문화적 역량도 관심 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부다페스트(헝가리)는 비교적 중세적 외양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거의 도시 전체가 근대 이전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고, 어찌 보면 많이 낡아 있는 느낌입니다.

지하철은 유럽에서 최초로 시설했다는 점에서 유명하고,

어느 노선은 땅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는데다가, 거기를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것으로 유명합니다만,

1호선의 경우는 무슨 놀이공원의 유람열차 같은 분위기가 살아 있고,

안내 방송 전후로 나오는 시그널 음악은 마치 옛날 컴퓨터 게임기에서 나는 소리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성 이스트반 성당은 이제 이전의 때를 완전히 벗엇고, 성당 주변의 바찌 거리 등은 이제는 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으며

화강석의 타일로 보도를 뒤덮어 놓아서 관광객을 위한 멋진 곳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강점은 역시 밤에 드러납니다.

부다페스트의 중심을 흘러가는 다뉴브 저쪽의 부다 지역에는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등이 있고,

이쪽 페스트 지역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이 건물에 대한 조명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대표적인 것은 세체니 다리)에도 조명이 들어오고,

유람선의 장식 전구들도 그 야경에 일조를 합니다.

이러한 야경은 어느 도시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비엔나(오스트리아)도 구시가지 중심으로는 중세적 외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복구 사업이 전도시적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좀 낡았다 싶은 건물은 볼빅 성당이나 성 스테판 성당 등에 불과합니다.

볼빅 성당은 여러 해 전에도 건물의 때를 벗기고 있었는데, 아직도 벗기고 있었습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는 규모 면에서나 양식 면에서 성 스테판 성당을 압도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시청 광장에 자그마한 가게가 즐비했고, 루미나리에가 환상적으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시청 광장은 스케이트 트랙이 설치되어, 이 트랙을 비추는 조명과

건물을 비추는 조명 외에는 특별한 감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엔나는 전체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좀더 부유한 티가 납니다.

건물에 대한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웬만한 장식에는 번쩍번쩍 하는 금붙이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도시 교통의 수단들도 신식입니다.

비엔나에도 다뉴브 강이 흐르고는 있습니다만, 이 강은 관광에는 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여름철에는 부다페스트부터 유람선을 타고 비엔나까지 갈 수 있다고는 합니다.

강 건너편에는 현대식 건물들도 적지 않이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엔나는 중세적 면모는 있으나, 서구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큽니다.


프라하(체코)는 최고의 관광지였습니다.

구시가지 쪽의 건물들도 그렇거니와 왕궁 지역도 하나의 관광단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광장이 많았고, 그 광장들이 모두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카를대학(찰스대학)이 구시가지 관광지의 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일반 관광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에도 가보았는데, 보존도 비교적 잘 되어 있었습니다.

시청 시계탑의 이벤트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매시간마다 시계탑의 창문이 열리며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습을 보입니다.

첨탑 끝에서는 실제 사람이 나팔을 불어 시간을 알립니다.

프라하에는 몰다우강이 흐르고 있고, 부다페스트나 마찬가지로 건너 편에 왕궁 단지가 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찰스교는 보행자만 다닐 수 있고,

허가 받은 미술가들이 작품을 팔거나 직접 스케치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왕궁단지는 규모가 컸고,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이름, 업소의 이름이 전통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주소도 이전 주소와 현대 주소를 병기하고 있었습니다.

왕궁(현재는 대통령궁)의 근위병 교대식도 근사했고, 그 밖에도 많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정말 관광객을 유인하는 방법을 아는 도시 같았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사람에 치어서 다닐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관광 단지 바깥은 건물을 짓는 데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20층짜리였는데, 비록 도시의 외곽지역이긴 했지만 부다페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부카레스트(루마니아)는 아쉬운 점이 많은 도시입니다.

북서쪽에 있는 나라들과는 달리 이 나라는 지중해적 여유로움과 분주함이 중심적 정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특정한 정치적 상황의 체험이 도시의 분위기를 많이 낮추어 놓았습니다.

처음에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나는 꼭 중국의 어디 지방 소도시를 들어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중국 북방의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했고,

삶의 풍경도 매우 유사했습니다.

그것은 도시로 집중하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열망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독재자는 도심의 주요 건물을 빼앗아서 프로레타리아에게 분배를 했습니다.

재정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이 건물에서 빠져나가고

그 건물의 용도가 단지 거주공간으로 바뀌게 되면, 문화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중세적 유럽은 분명 아직도 이 도시에 줄기차게 남아 있지만, 대중적 생활이 그것을 침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관광 자원은 적지 않지만,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많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던 것입니다.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는 외곽만 지나쳤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이곳은 하나의 변방이었고,

보존해야 할 문화적 자원에 대한 배려보다는 현대화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컸던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도시 외곽에는 수없이 많은 기업 광고판이 널려 있었고, 그 중에 SlovaKIA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아(KIA) 자동차 공장이 이 나라에 있는데, 이를 이용하여

위트를 발휘한 문구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 이제 평점을 매겨 볼까요?

최고 평점은 프라하입니다. 너무 관광지 같은 느낌만 빼면 참 매력 있는 도시입니다.

그 다음은 부다페스트에 주고 싶습니다. 야경만큼은 세계 최고입니다.

비엔나가 그 다음입니다. 유로화를 써야 하는 점도 약점입니다.


그럼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페치)는 대체 몇 점짜리일까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 자세히 쓰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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