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써니케이 2012. 7. 4. 03:24


기본적으로 창은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사이의 소통의 통로다.
창을 통해서 사람의 집들은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창을 통해서 빛과 공기를 받아들인다.
한편 창은 안과 밖을 차단하는 벽이기도 하다.
겨울 방안의 온기는 닫힌 창을 통해서 잘 보존된다.
이런 양면성으로 인해 창은 유리라는 참으로 절묘한 매체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의 집은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양식에 따라 창을 낸다.
그리고 그 크기나 면적은 지역의 기후적 특성과도 관련을 가진다.
에스키모의 이글루는 보온이 중요하기에 창이란 것이 거의 없다.
과수원의 원두막도 창이라 할 만한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바람의 유통이나 조망의 편의로 하여 사방을 아예 다 터놓기 때문이다.

헝가리에 와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창의 모습이었다.
요즈음의 한국 집들이 창을 시원하게 내는 것과는 달리
이들의 집은 창이 매우 인색하다.
크기도 작을 뿐 아니라, 갯수도 적다.
그리고 거의 열지 않는다.
겨울에 찬바람을 막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요즘처럼 체온 이상의 기온에는 아주 극약이다.
그런데도 차라리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훌러덩훌러덩 옷은 벗을 망정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지는 않는다.
게다가 겨울철에나 사용하는 덧창을 여전히 닫고 있는가 하면
커튼도 단단히 쳐서 도무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조망이나 채광에는 별 뜻이 없고, 단지 가리고만 싶은가 보다.

헝가리 이웃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나는 창의 크기와 형식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헝가리만의 특성인지, 아니면 동유럽의 문화인지,
아니면 서양적인 현상인지를 가리고 싶은 것이다.
동유럽의 창들이 비교적 작은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 주택의 경우 헝가리가 제일 작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바로 옆나라인, 그리고 한때는 헝가리의 일부이기도 햇던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국경을 넘으면서 뭐가 다른지 유심히 보았다.
국경이라는 게 그저 강 하나를 두고 이쪽 저쪽으로 갈린 곳이지만
그러나 문화적 풍경은 사뭇 달랐다.
한 마디로 훨씬 잘 사는 것 같았다.
사실 두 나라의 국민소득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크로아티아 시골의 집이 바로 전에 보았던 헝가리의 집보다 훨씬 좋다.
무엇보다 창이 넓었다.
거의 모든 집이 2층에 발코니를 두고 있었고 널찍한 창을 내고 있었다.
집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니면 열심히 관리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기후로 치면 다소간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하는 곳으로서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여행 중에 확인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슬라브 계통의 언어를 쓰는 중부, 동부 유럽의 한 나라이며,
헝가리만 유일하게 헝가리어를 쓴다.
관광이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밝다. 식당에서도 영어를 쓰는 데 지장이 없다.
헝가리도 관광이 중요 산업이기는 하지만 관광객 유치에 그렇게 열을 내는 나라는 아니다.
그리고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영어는 이제 막 배우는 중이다.

헝가리에 거주하면서, 아이들의 교육을 헝가리에 맡겨 놓은 나로서는
이 나라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역사의 흐름 가운데 오랜 기간 질곡의 지경에 처해 있었던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공산 치하라는 것이 사람들의 표정을 애매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이 나라가 자신들의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여
국가 발전의 비전을 공유하여 열정을 가지고 달려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적 전망은 이 나라의 장래를 매우 불투명하게 보고 있지만
그 옛날 성 이스트반 국왕이 나라의 기초를 놓으면서
기독교적 정신으로 하나가 되었듯이
그리고 한 동안 강성한 국가로서 맹위를 떨쳤듯이
이제 국민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먼저,
그 그 작은 창을 넓히면 좋겠다.
아니면 활짝 열어놓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계의 발전해 가는 새로운 공기를 흠뻑 들이켜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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