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멀리서 문안합니다

써니케이 2012. 9. 27. 06:47

남성국민학교 동창회 회원 여러분,


그 동안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해 말에 한국을 떠나 지금 중부 유럽의 헝가리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근무처(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안식년을 받아 이곳 대학에 와서 연구하고 강의하며 지냅니다. 1년 동안 파견되었기 때문에 올 연말이면 한국에 돌아가게 됩니다.
제가 있는 곳은 헝가리에서도 남쪽에 있는 페치(Pecs)라는 대학도시입니다. 이곳에는 아직 한국학을 공부하는 전공은 없으나, 한국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유럽에서도 독특하게 우랄어 계통으로서 알타이어인 우리말과는 사촌쯤 되는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체구나 골격은 이미 유럽권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정서나 문화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곳입니다.
특히 이름을 '성-이름' 순으로 쓴다든지,
주소를 큰 데서 작은 데로 쓰는 것, 그리고 연도를 연-월-일 식으로 쓰는 것은 매우 동양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헝가리 과학자가 파프리카에서 비타민C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만큼 파프리카를 즐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작은 파프리카는 우리 고추나 다를 바 없고, 그 가루는 약간 달기는 하지만 고춧가루와 똑같습니다. 음식에 다대기 같은 양념도 하는데, 우리 육개장과 맛이 똑같은 "구야쉬"라는 음식이 재미 있고, 생선 매운탕인 "할라즐레"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곳 페치는 2010년도에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의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벌써 4세기에 로마의 속주로서 번성했는데,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그 유적과 무덤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시는 전통적인 중세 유럽풍의 건물로 뒤덮여 있고, 각종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는 다른 나라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한국사람 일반인이라고는 우리 내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키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중국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혹 더러는 '야빤"(일본)이라고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코레아이'라고 힘을 주어 말해 줍니다. 한국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이곳 헝가리에도 한류가 불기 시작해서 지금 헝가리 국영 텔레비젼에서는 한국 드라마 '이산'이 방송되고 있고,
고등학생들 중에는 한국 아이돌 그룹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학생들도 있습니다. 싸이의 소식도 벌써 전해졌습니다.

한국말은 페치대학교에서 두 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기초반과 중급반인데, 제가 헝가리말을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곧잘 따라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한국의 국가 규모나 임금 수준 같은 것을 얘기하면 매우 놀랍니다.
인구가 1천만이 넘을까 말까 하는 나라이고,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람들의 생활이 곤핍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라의 성장동력이 없어서 걱정만 많이 하지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강조합니다. 이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농산물, 저렴하고 맛있는 식료품
그리고 부다페스트나 페치 같이 매우 아름다운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를 자랑하라고 말입니다. 아울러 어쩌면 내가 은퇴한 후에 이곳에 다시 올지 모르겠다고 덧붙입니다.

현재 제 아들 둘이 바로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큰애는 연세대를 2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 이곳으로 다시 입학을 했고, 작은애는 외고를 졸업하고 한 해 재수한 후에 이곳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큰애는 치과대학(3학년)에서 작은애는 의과대학(2학년)에서 공부합니다. 이곳은 유럽에서도 의학교육으로는 명성이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독일어 과정과 영어 과정을 개설해서 전세계의 외국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학생은 모두 80명쯤 됩니다. 워낙 기초의학이 강한 곳이라서 교육의 품질을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데 그만큼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몇 년씩 더 공부해야 하는데 일년동안을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낸 셈입니다.

지난 여름 방학 기간에는 이쪽 중부 유럽을 원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등.. 아참 독일도 다녀왔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이쪽 중부 유럽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빌고,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헝가리 페치에서 김병선

부다페스트 사진을 선물로 올립니다. 그 유명한 다뉴브 강에 있는 세체니 다리(혹은 체인브릿지)입니다. 멀리 부다 왕궁도 보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변의 야경이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나비 큐브 사용기 1  (0) 2013.10.03
아이나비 큐브 장착 후기  (0) 2013.10.03
회식과 외식  (0) 2012.07.09
개인과 국가  (0) 2012.07.08
귀소(歸巢)  (0) 201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