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글과 말

소(牛)보다는 말(言)이 오고가야

써니케이 2006. 5. 6. 13:40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서로 잘 아는 사이죠?" "호상 간에 협력해서 임무를 완수합시다." 먼젓 사람이 '남'이고 나중 사람이 '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남과 북의 그리고 중국 연변 지역의 한민족 동포 학자들이 우리말 정보기술의 통합을 위해서 만났던 연변의 한 호텔에서 우리는 상식을 뒤집었다. 한 번 만나고, 다음 해 또 만나고, 또 그 다음 해에 공동 연구 사업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말씨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1994년에 첫 번 만남에 크게 설레고 있던 우리에게 주어진 압력은 이질화의 극복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연구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런 부담은 없었을 것이다. 연변의 동포들은 이제 남과 북이 하나의 우리말 규범을 만들어 따라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통일의 시급성을 강조하다 보니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에 대해서 주목했던 것이다. 언어처리 정보기술의 표준에 대한 통일을 논의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언어적 통합에 대한 하나의 실험을 했던 것이다.
남과 북의 학자들이 직접 만나서 그 이질화의 현장에 서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결국 언어문화에 있어 우리는 남이 아님을 확인했다.
차이는 분명 있었다. 그것은 언어적 차이가 아니었다. 단지 방언적 차이었다. 전라도 사람인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그렇다. 우리는 한글문화권(북에서는 '조선어 문화권'이라 한다.)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동포 학자 한 사람이 표현했던 대로 명색이 국제회의였지만, 통역이 필요 없는 회의였다. 중국에서 회합하기 위해서 국제회의라는 무늬만 걸쳤지 사실상 민족회의나 다음이 없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도 두 지도자는 통역을 대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청난 폭발력의 남북 공동선언문을 한글로 남겼다.

북의 동포와 직접 만나서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는 느낌이 들 것이다. 가끔 TV 화면을 통해서 보고 듣는 북한의 말은, 그들의 과장된 선전투의 어법만 양해한다면, 그리고 체제 차이에서 오는 용어의 차이만 이해한다면 아무런 불편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저 자꾸만 대화를 하고 소떼보다는 말(언어)이 오고가야 한다.
자연인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언어적 교류를 가지는 것은 아무런 장애가 없다. 문제는 인위적 제도와 권위가 다르다는 데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일 때는 모든 것이 같았으나, 그것이 '한글'이 되고, '조선글'이 되면서 차이가 생긴 것이다. 북한의 사전에서 낱말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그러한 인위적 차이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북한의 자모순: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ㄲ-ㄸ-ㅃ-ㅆ-ㅉ,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ㅐ-ㅒ-ㅔ-ㅖ-ㅚ-ㅟ-ㅢ-ㅘ-ㅝ-ㅙ-ㅞ)
초성의 'ㅇ'은 'ㅅ' 다음이 아니라 사전의 끝부분에 중성(모음) 부분에서 찾아야 하고, 쌍자음은 'ㅎ' 다음에 놓여 있고, 2중모음의 위치도 우리와 다르다.
자모순이 다르니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코드 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남한 자체만 하더라도 완성형이니, 조합형이니, 통합형이니 하는 다양한 코드가 있는 형편이고, 이런 것들이 북한의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남과 북이 교류를 위해서 자료를 주고 받을 때 코드 변환이라는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번거롭더라도 정보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글문화권의 활력소가 된다.

남북의 정상이 문화적 교류에 합의한 만큼 이제 물꼬는 트였고, 물꼬라기보다는 아예 커다란 다리가 놓여졌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게다가 정보교환을 위한 국제표준 부호계(유니코드)가 이미 정해져 전세계의 문자를 통합해 놓았으므로 유니코드로써 의사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남과 북이 코드의 통일을 위해서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유니코드라는 우회로로써 디지털 자료를 교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유니코드가 남한의 의도대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아울러 북이 좀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교류가 보다 실질적일 수 있다. 북의 지도자가 컴퓨터와 인터넷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니 그것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그렇다. 이미 우리는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인위적인 걸림돌들은 남북 화해와 교류라고 하는 역사적 압력에 분쇄될 것이다.

한글문화권은 단지 통용되는 언어가 한글과 한국어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글로 이루어 놓은 문화적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글로써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한글로써 문화가 창조되고, 전달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우리의 민족문화가 디지털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서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지구촌에 아름답게 선보일 때에 우리의 진정한 한글문화권은 빛을 발할 수 있다.
새로운 세기는 인터넷이라는 소통의 통로를 발전시키며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식정보시대의 새로운 소통 공간에서는 심리적 거리가 중요할 뿐 지리적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TV의 교차 시청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서로 방해전파를 그만 보내야 하겠지만, 남과 북은 불행히도 방송방식이 달라서(북은 PAL, 남은 NTSC) 특별한 몇몇 사람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스트리밍 기술을 활용한다면 아직 화질이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방송 방식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누가 만든 줄 아시오, 병선 선생?'
연변의 한 호텔 방에서 나의 상대자는 최대한의 친밀감을 표시하며(성 없이 이름만 부르며 존칭을 붙이는 것) 두세 차례 반복해서 내게 물었다.
'글세요...... 혹시 그분이?'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computer를 '전자계산기' 줄여서 '전산기'로 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전자계산기' 줄여서 '계산기'라고 고집했다. 우리가 계산기라고 부르는 calculator를 '수산기'라고 하는 것을 포함해서, 사흘 밤을 같은 방에서 잠을 잊으며 부대낀 그와 나는 가장 핵심적인 용어인 컴퓨터에 대해서 복수 표준으로 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그러나 삼년 여에 걸친 이러한 노력은 우여곡절 끝에 '정보기술 표준 용어사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남과 북이 그리고 연변의 동포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최초의 사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동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인위적인 상황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우리 한민족의 지혜, 그리고 우리가 자랑하는 과학적인 문자- 한글, 이것들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묶어 주기에 충분한 요소다. 차이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협의하고 타협하고 절충하려 애를 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지혜, 그리고 본래부터 하나였던 우리 언어와 문자로써 능히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좀 다르면 어떤가? 방언적 차이는 오히려 언어를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미래의 얼굴>(코오롱 사외보)에 실렸던 컬럼

[2000.1.1]

'말과 글, 글과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어사전을 잘 활용하기  (0) 2006.05.06
'찌는 것'과 '익히는 것'  (0) 2006.05.06
'소위, 말하는'의 경우  (0) 2006.05.06
단어의 뜻이 겹치는 현상  (0) 2006.05.06
표정이 있는 통신 마당  (0) 200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