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이야기

동창회장 원요는

써니케이 2006. 5. 6. 19:56

그렇게 좋은 놀이터가 없었다.

통나무 원목들이 층층이 싸여 있고,

잘 잘라진 송판들이 더미를 이루고 있으며,

톱밥이 수북했던 곳이었다.

원요 네 집은 제재소였다.

제일연탄도 그 집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구경거리도 많았고, 숨바꼭질을 위해서는

정말 천혜의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영정통에서 역전으로 통하는 골목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이 가까이 있었다면 날마다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부자집이라 양옥집이 널찍널찍했다.

오르락 내리락 공간도 넓었다.

원요가 워낙 친구를 좋아하고,

성격도 순해서 정말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 들었다.

다만 그 서글서글한 눈을 가끔씩 껌벅거리는 것만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원요 엄마는 어린 내가 보아도 미인이셨다.

원요가 엄마의 DNA를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그 집에 가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에 이상한 도복을 입은 사람들 사진이 있었고,

커다란 동그라미도 걸려 있었다.

보여 주는 앨범의 사진들도

대체로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슨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거의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원요도 그 사진들에 대해서는

내 궁금함을 적극적으로 풀어주려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다 아시겠지만,

원요 아버님은 원불교의 주요 인사시다.

그냥 나는 사업만 크게 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광대학교의 총장을 지내셨으며,

마한과 백제의 문화 유적은 이 분 덕분에 새 생명을 찾게 되었다.


원요는 정말 대단한 친구다.

졸업을 하고서 동기들을 위해서 가장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물론이고, 고등학교 동창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주었다.

돈도 많이 썼을 것이고, 시간도 많이 뺏겼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제나 이제나 자기를 희생하면서

친구들의 놀이터 만들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예 친구 한 사람은 매제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