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냉정한 사람이지만 나름대로 감수성도 예민한 편이다. 가슴이 저려오는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일이 적지 않다. 살아 오면서 뭐 그리 서럽고 한스러운 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말 감동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주인공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쉽게 합치곤 한다. 이러한 나의 습성은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다. 아버지야말로 서럽고 한스러운 일이 적지 않은 분이다. 아니 그냥 딱 한 가지가 서럽고 한스러우실 것이다. 남북 분단! 북에 두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가 눈에 밟혀서 그랬는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명절이면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노인들에게 세배하러 다니곤 했다. 모두 월남하여 홀몸이 되신 분들이었다. TV에서 가족 상봉의 장면만 나오면 어김 없이 눈물을 비치셨다. 그건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 울어 본 경험을 처음으로 하던 때가 기억 난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였다. 이윤복이라는 어린이가(우리보다 두어 살 많을 것이다.) 대구에 사는데, 그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부모 없이 동생들과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자기의 이야기를 일기로 남겼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것을 발굴하여 책으로도 펴냈고, 드디어는 영화로도 만들었던 것이다. 줄거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슬픈 영화임에는 분명했다. 시공관(지금 그 자리에는 무슨 건물이 있던가?)에서 상영했고, 우리는 단체 관람을 했다. 우리 6학년들은 2층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절정에 이르면서 우리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앞 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아이들이 드디어 울기 시작한 것이다. 맞다! 하품도 전염되고, 울음도 전이된다. 주변의 친구들도 울었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영화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자 애들 때문에 운 것이다. 그건 일종의 군중 심리였다. 우는 건 창피한 일이지만, 정신 건강에 나쁜 일은 아니다.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용어로써 설명했다. 함께 우는 일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이천년 전에도 그랬다. “너희는 내가 애곡하여도 울지 않았다.”고 예수님은 탄식하셨다. 아버지도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으신다. 오래 울었고, 눈물도 다 말랐으며, 너무 지치신 것 같다. 이제 90이시니, 분단 체험만도 55년이 넘으셨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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