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없는 아침
김병선
사흘의 피로에 절어서 초저녁부터 널브러졌다.
밤엔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꾸었는지도 모르지만
꿈이 기억될 공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어머니 덕분에
오래 전 소꼽친구도 만났고,
서먹했던 동료와도 인사했고,
외가 식구들은 모처럼의 해후에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늘로 가셨다.
오로지 몇 줌의 가벼운 먼지와
까맣게 변해 버린 틀니의 금속 부분과
왼쪽 다리를 지탱해 주던 티타늄 쇳조각만 남았다.
그것들은 당분간은 지상에 있겠지만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결코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는 안 계신다, 이 지상에만…….
사흘 전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애자(哀子)!
육 년 몇 개월 전에 얻었던 고자(孤子)의 별칭과 함께
나는 고애자(孤哀子)가 된 것이다.
드디어 진정한 고아(孤兒)다.
이 고아의 아침은 그냥의 일상일 뿐이다.
오래 비워둔 거실의 먼지를 걷어내고,
옷가지를 정리하는 정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 있으면 늘 하던 대로
베이글을 구워서 치즈 한 장과 파프리카 한 조각
우유 한 컵으로 아침을 먹을 것이다.
아참,
베이글도 한 개,
우유도 한 컵을
줄여야겠구나.
(201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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