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의 마법사
―전자레인지가 굳어버린 사랑도 되살려 드립니다―
김병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혹 굳어 있지 않나요?
불같이 타올랐던 한때의 열정이
이제는 식어가고 있지 않나요?
아니,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그냥 미지근한 그대로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빙하기의 어느 날
온도계의 눈금으로도 표시되지 않는,
그 극냉의 얼음덩어리처럼
부스러질지언정 녹지는 않는,
언제 ‘사랑’이라는 시절이 있었던가 싶은
되돌릴 수조차 없는 그런 상태인가요?
그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세요.
내 빈 공간의 중심에 그 마음을 얹어놓으세요.
그리고 문을 닫고
필요한 만큼 다이얼을 돌리세요.
조금 소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당신의 사랑은 잠시 후
기적처럼 회복되리다.
너무 오래 얼어붙었던 마음이라면
먼저 해동을 하시고,
이미 약간의 온기라도 있는 상태라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들어온 모든 마음을 빙빙 돌려가며
내 모든 와트(watt)를 다하여
극초단파를 골고루 뿜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세포는
거죽에서 속까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빠짐없이 진동할 것입니다.
그 진동의 끝에 그 마음의 덩어리는
스스로 열을 낼 것입니다.
잃었던 사랑의 온기를 회복할 것입니다.
땡 소리와 함께
모든 작업이 끝나면
당신은 조심스럽게 문을 여셔도 됩니다.
이 엄청난 마법의 결과로
그 마음은 이미 충분히 달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세요.
너무 욕심을 내서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지는 마세요.
자칫 당신의 사랑이 다 타버려서
되돌려 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을지 몰라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굳어버린, 식어버린, 얼어버린
당신의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금속성의 반지를 함께 넣거나,
그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쇠사슬로 옭아매면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오로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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