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오븐의 마법사 -전자레인지가 굳어버린 사랑도 되살려 드립니다-

써니케이 2013. 11. 18. 14:03

오븐의 마법사

전자레인지가 굳어버린 사랑도 되살려 드립니다

 

김병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혹 굳어 있지 않나요?

불같이 타올랐던 한때의 열정이

이제는 식어가고 있지 않나요?

아니,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그냥 미지근한 그대로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빙하기의 어느 날

온도계의 눈금으로도 표시되지 않는,

그 극냉의 얼음덩어리처럼

부스러질지언정 녹지는 않는,

언제 사랑이라는 시절이 있었던가 싶은

되돌릴 수조차 없는 그런 상태인가요?

 

그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세요.

내 빈 공간의 중심에 그 마음을 얹어놓으세요.

그리고 문을 닫고

필요한 만큼 다이얼을 돌리세요.

조금 소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당신의 사랑은 잠시 후

기적처럼 회복되리다.

너무 오래 얼어붙었던 마음이라면

먼저 해동을 하시고,

이미 약간의 온기라도 있는 상태라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들어온 모든 마음을 빙빙 돌려가며

내 모든 와트(watt)를 다하여

극초단파를 골고루 뿜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세포는

거죽에서 속까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빠짐없이 진동할 것입니다.

그 진동의 끝에 그 마음의 덩어리는

스스로 열을 낼 것입니다.

잃었던 사랑의 온기를 회복할 것입니다.

땡 소리와 함께

모든 작업이 끝나면

당신은 조심스럽게 문을 여셔도 됩니다.

이 엄청난 마법의 결과로

그 마음은 이미 충분히 달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세요.

너무 욕심을 내서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지는 마세요.

자칫 당신의 사랑이 다 타버려서

되돌려 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을지 몰라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굳어버린, 식어버린, 얼어버린

당신의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금속성의 반지를 함께 넣거나,

그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쇠사슬로 옭아매면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오로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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