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 오븐
―전자레인지가 아조 녹여 버린당께―
김병선
뭣이냐, 거시기 그… 말허자면
여편네 맴이 쪼까 그런 때가 있잖어?
한창때는 뜨거워서 못 견디것더니만
시방은 식은밥맨치로 맛대가리가 없어지지 않았능개벼.
거기가 별지랄을 해싸도
도시 아무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 말여.
아니믄,
동지섣달에 유닥 추운 날 있지?
그냥 열 발고락과 열 손고락이
모도 다 얼어터지는 때 말여.
그런 때에, 고샅에다 내 놓은
바가지 물이 얼어붙듯이 말여,
그 여편네의 맴이라는 게
왼통 쌀쌀맞기가 도무지 말 한 마디
붙일 수 없는 지경인 때가 있다면 말여.
그 여편네의 맴을 몰래 끄내다가
이 네모난 상자의 한 가운데에 살포시 두어 보랑께.
그리고는 문을 살며시 닫고는
거시기 오른쪽 손잽이 있지?
그걸 웬만 돌려 버리랑게.
쪼까 시끄러울 것이지만
잠시 지둘려 봐!
그 여편네의 맴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랑게.
근디, 냉냉하게 지낸 지가 쪼까 시간이 지났다면,
사알짝 녹인 담에 하는 것이 좋고,
아적 그리 심각허지는 않다 싶으면
쪼매만 돌려도 괜찮당께.
그것이 내 상자 안으로 들오기만 허면
우선 빙빙 정신 사납게 돌려대고,
내가 거시기 뭣이냐 극초단파라냐 뭣이라냐를
팍팍 뿌릴 터닝께.
그라믄 그 냉정한 맴이 말여,
거죽에서 안창까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빠짐없이 정신없이 떨 것이여.
그리고는 인자는 쬐끔씩 쬐끔씩 열리 올르다가는
지 정신이 돌아올 것이랑께.
그때여 땡 소리가 날 것이여.
그라믄, 문을 열어.
그냥 팍 열어도 되고, 조심스럽게 해도 되야.
그 거시기 말허기가 좀 뭣허지만
그 여편네가 언제 그랬냐 싶게
사근사근 헐 거여, 껄껄.
근디 조심허랑께.
욕심을 몽땅 내가지고, 끝까지 돌리다가는
왼통 다 다 타버려 가지고
눈 앞에 숯덩어리만 덩그라니 뇌일 것이여.
글고, 기억허랑께.
굳어버린, 식어버린, 얼어버린
여편네의 맴을 되돌리기 위해
금가락지로 유인허거나,
그 마음을 잡는다고
쇠사슬로 옭아매면 절대로 안 된당께.
그라믄 그냥 그 길로 황천길이여.
아, 터져 버린당께.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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