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은 초등학교 때 ‘장(長)’을 맡아본 기억이 없다. (우리가 몇 학년 때부터 반장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 대답해 보시길... 아니 해 본 사람 자백하시길......) 고등학교 때까지도 반장은 한번도 못해 봤다. 부반장은 한두 번 했지만 반장 못 해 본 것이 많이 아쉽다. 사실 대학에서도 ‘과대표’를 못 했다. ‘못 했다’는 말은 하고는 싶었다는 것을 암시하므로, 실제로는 ‘못 했다’ 30%, ‘안 했다’ 70% 쯤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김 군은 무슨무슨 부장이나 학급회의 의장, 그리고 대의원 같은 것은 많이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엔 회장으로 지명된 김정기 군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학예부장을 했었다. (그 추천의 변은 다음 기회에 검토하기로 한다.) 4학년 때부터 김 군의 학교는 특별활동이라는 것을 했다. 김 군은 서예반에 들었다. 미술도 별로였고, 글짓기도 관심이 없었다. 노래 부르는 것도 상당히 쑥스러웠다. 그러나 글씨 쓰는 것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 있었는지 나름대로 괜찮았다. 첫 시간이었다. 우리들이 최고 학년이었고, 후배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지도 선생님의 이름이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마른 체격에 얼굴이 검고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하며 높으신 분이셨다. 우리들 담임을 하신 분은 아니었다. 첫 시간에는 초록색 천을 책상 위에 깔고, 거기에 신문지를 펴 놓은 다음에 기본적인 획 긋기를 했다. 아마도 간단히 ‘우리 나라’ 이런 글자를 썼을 것이다. 검은 색 먹을 갈면, 약간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도 있듯이 언제나 어딘가엔 먹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간을 마칠 때에 선생님은 정리를 하기 위해 서예반의 대표를 뽑으셨다. 잠깐의 생각 끝에 선생님은 김 군을 지명했다. 다 일어섰다. 이제 인사만 하면 되었다. 뭐가 되냐면, 김 군이 서예반의 대표로 확정되는 일과 첫 시간을 마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김 군에게 말씀하셨다. “구령을 붙여 봐!” 김 군은 선생님의 말씀에 멈칫거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내 시선이 김 군에게 모였다. 김 군은 표정은 상기 되었으나,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한 1분쯤 되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촛대를 옮기고야 말았다. 김 군보다 조금 더 큰 김양은 군에게 “네가 해 봐!”라 하셨다. 김양은 군은 큰 키에 걸맞게 ‘구령’이란 걸 ‘붙여냈다.’ “차려! 선생님께 경례!” 아뿔싸! 김 군은 원통했다. ‘차려’도 알고, ‘경례’도 아는데, 그리고 ‘구렝이’도 아는데, ‘구령’을 몰랐던 것이다. 그걸 ‘붙이라니!’ 무슨 딱풀도 아니고, 스티커도 아닌 ‘구령’을 말이다. 한번 옮겨간 촛대는 다시는 되돌아올 줄 몰랐다. 마치 ‘구령’이 자신을 몰라본 김 군을 비웃고, 철저히 따돌리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 이후로 김 군은 구령과는 영 인연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남들 다 가는 군대에도 못 갔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 날 이후 김양은 군은 어떤 인연으로 구령과 더불어 살아갔는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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