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이어서 월드컵이 열리는 올해도 축구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니 전세계가 들썩일 것 같다. 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하는가? 왜 세계인들이 축구에 미칠 지경인가? WCB에서 야구 팀이 비교적 좋은 성적을 내고,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축구라는 운동 자체의 보편적 접근성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와 한 조가 되어 벌써부터 신경전이 한창인 저 아프리카 토고라는 나라의 그 빈한한 소년들이 맨발로 모래사장에서 형편없는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TV 보도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축구라는 것은 그냥 공만 있으면 찰 수 있는 것이다. 논두렁도 좋고, 진창도 괜찮다. 우리 집에서도 거실이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축구장이었던 적이 있다. 그냥 가상적으로 골대만 설정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최소한 배트가 있어야 하고, 글러브와 공이 있어야 하는 야구와는 달리 전세계인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종목이 바로 축구다. 규칙도 간단해서 경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냥 오프사이드 정도만 알아도 규칙의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축구를 즐긴다. (베트남에서는 저녁에 TV에서 축구를 두 경기 씩이나 연속해서 녹화 방송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세계인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말하려 한다. 그것은 대리전(代理戰)이라는 점이다. 옛날 같으면 국가간의 힘의 차이를 전쟁으로 드러내고, 전쟁을 통해 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 복속하게 되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역사의 줄기를 바꾸어 놓은 전쟁에 대해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거나 단순히 재미 차원에서 볼 수도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간 희생이 크지 않았다. 그 희생이 진 자에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긴 자나 진 자나 공히 재산 상의 손해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고귀한 인명의 손실을 감당해 내야 한다. 만일 오늘날에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진다면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본격적 전쟁이 못 된다.) 그 피해의 범위가 개별 국가를 넘어서서 결국에는 전세계적인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래서 본격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싸우기를 좋아한다. 힘을 겨루어 승자가 전리품을 얻는 것은 동물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서도 계속 되는, 일종의 본능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축구를 스포츠라 하는데, 우리의 어법을 잘 살펴보면 스포츠를 전쟁으로 취급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일전(韓日戰)’, ‘잘 싸우고 돌아오다’, ‘우리가 이기고, 그들이 졌다’, ‘용병(傭兵)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다.’ 스포츠신문의 기자들은 언제나 종군기자처럼 헤드라인을 뽑는다. 특히 축구는 너른 벌판에서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며 몸으로 부딪는다. 심판이 없다면 대부분의 축구 경기는 곧바로 격투기로 돌변할 것이다. 실제로 축구 하다가 전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축구는 집단 간의 전쟁을 대신한다. 축구 선수들은 싸우고자 하는 어떤 사회 집단의 욕망을 대신해 준다. 국가 간의 싸움이라면 상당히 심각해진다. 다른 국가는 몰라도 일본만큼은 언제든지 우리의 타도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과 싸우는 다른 나라는 언제든지 우리의 열렬한 응원을 받게 된다. 축구를 통해 민족적 결속이 더 강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도 전쟁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집단 패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다 일어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싸움은 주로 남창국민학교 아이들과 일어났다. 남창국민학교는 우리보다 1년 먼저 개교한 학교다. 이리국민학교가 비대해지면서 남중동과 창인동의 학생들을 따로 떼서 학교를 만든 것이었다. 우리 학교에도 그 두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같은 지역에서 어떤 아이는 사립으로 가고, 어떤 아이는 그냥 공립학교에 배정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둘 다 신설학교였고, 위치도 앞뒷집이라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남창국민학교 쪽 아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기억으로 두 차례 정도 집단적으로 부딪힌 것 같다. 집단이래야 10여명 정도였고, 그것도 몸으로 직접 싸운 것이 아니라 서로 멀리서, 남중동과 창인동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투석전을 벌이는 정도였다. 물론 본격적인 전투로 비화한 적은 없었다. 한번은 우리 학교 강당(유성당)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다. 어떤 방송국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이 행사에 남창국민학교 학생들도 왔었다. 그 친구들은 남성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상해 있을 터였는데, 실제로 건들건들하는 좀 불량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옷 차림새부터가 달랐고, 표정도 아주 많이 쇠어 버린 친구가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무언가 우리들과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를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났다. ‘김○곤’이라고...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대개 다 알 것이다. 차라리 축구 정기전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사립 간에는 그런 행사가 성립되기 어려웠나 보다. 또 우리 동창들 중에 축구를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는지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고따이’는 많이 했는데, 축구를 한 기억은 없다. 제대로 된 축구공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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