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누나하고 손 잡고 함께 거닐던 오솔길/ 참새들 노래하던 정든 내 고향 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랫빛/……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려 주어라 6학년 무렵에 우리의, 아니 나의 정서는 대충 이런 노래의 수준이었다. 이제 사춘기가 열릴락 말락 하는 정도였다. 그때 우리가 부르던 노래에는 여자 친구 얘기는 전혀 없었다. 이성이라면 겨우 엄마 혹은 누나가 등장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노래에 등장하는 ‘누나’들을 통해 아직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성적인 기분을 느끼곤 했다. ‘누나하고 손 잡고…’ 특히 이 노래는 저 유럽에 사는 어떤 민족의 노래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뭔지 모를 아련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시골 소년의 소박하고 순진한 정서와 잘 어울렸다. 단조의 노래였던 만큼 약간은 슬픈 기색이 노래에 묻어났다. 가볍기는 하지만, ‘퐁당퐁당’ 역시 촉감적인 이미지로 그림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좋아했던 노래였다. 아직은 전석환이란 사람이 국민가요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지 않을 때여서 그런 동요가 대표적인 학교 창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윤희칠(후에 희준으로 개명)의 노래는 그래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청소년 출입 금지 구역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윗논의 둑이 터져서, 아랫논이 갑자기 물바다가 되는 느낌이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랫논의 곱상한 모들이 순식간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마련한 노래 자랑 시간에 그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랑이라면 하지 말 것을…’ ‘사랑’이란 말조차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그런 단어는 있되, 구두로 표현하거나 문자로 쓰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고 스스로 금기시했던 그런 시절에 그것도 학교의 노래 자랑에서 희칠이는 거침없이 불러 댄 것이다. 어린이가 ‘배호’가 다 뭐야! 순간 우리는 선생님의 약간은 일그러진 표정을 읽었다. 그러나 희칠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처음 그 순간 만나던 날부터…’ 아니, 벌써 오래된 사연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심정, 그칠 줄 몰라’ 만난 날부터 외로웠다는 이 정서적 애매성을 어찌 초등학생들이 알리요마는 우리는 너무나 놀랐고, 희칠이는 당연한 듯했다. 희칠이 노래는 거침이 없었고, 선생님도 중간에 제지할 생각을 접으신 듯했다. 희칠이는 그냥 애들이 어른들 노래를 부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유행가처럼 불렀다. 목소리 자체가 변성기가 끝나갈 무렵의 음질이었고, 거칠거칠한 질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나름대로 비브라토까지 구사했던 것이다. 희칠이는 그 음색처럼 행동도 좀 거친 편이었다. 그가 재원이처럼 단정하게 일직선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관엽이처럼 다소곳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막 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자기 집이 학교 바로 앞에 있었고, 철공소를 했었다. 그 집에 가면 발갛게 달아 있는 쇳물도 볼 수 있었고, 그 쇳물로 이것저것 철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길다란 철막대들도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희칠이 사촌도 우리와 함께 다녔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구더라? 종두 아니던가?) 키도 크지 않았고, 인물도 없었다. ‘야윈 두 뺨에 흘러내릴 때’ 희철이는 정말 몹시 야위었다. 야위긴 했지만, 병색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물렁하지 않고 질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 성적은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약간은 아웃사이더, 그래 이 표현이 제일 어울린다. 그가 우리와는 별다른 세계의 사람임을 드러낸 것으로 노래 외에 또 한 가지를 더 들 수 있다. 학교 운동장에 원판에 손잡이를 세운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희칠이는 아무리 빠르게 돌려도 어지럼을 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돌리라면서 그 어지럼을 즐기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이 노래가 나의 레퍼토리에 올라간다. 그러면서 희칠이 생각도 한다. (희칠이는 아예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한다. 안개 속으로 가버렸다 한다. 시련이 더 이상 없는 곳으로...) ‘외로운 시련, 그칠 줄 몰라’ 노래를 부르면 그 때의 그 노래 자랑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여전히 알딸딸한 채 희칠이의 노래에 얼이 빠져 습기에 젖은 눈시울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사랑 이라면 하지 말 것을 처음 그 순간 만나던 날부터 괴로운 시련 그칠 줄 몰라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물이 야윈 두 뺨에 흘러내릴 때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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