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바다 미완곡(未完曲)

써니케이 2006. 6. 2. 14:48

I.

 

그때, 나는

조갑지를 줍고 있었지.

기슭에 부딪는 물거품은

무지개가 되고, 나도

무지개가 되어서

조갑지에 고인 물을 손으로 받으며

바다를 줍고 있었지.

 

한 웅큼 손으로 안은 바다, 바다를

몇 번이나 쥐었다 펴고는

나는 다시 모래城을 쌓고 있었지.

 

모래성을 몇 번이나 쌓고 헐 때마다

나는 그 城의 城主가 되고

그 城主는 금새 暴君으로 변하여

밀물이 바다를 주름 잡듯

모래성을 한바탕 주름잡고 있었지.

 

II,

 

그때,

무성하던 어느 여름,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지.

다시 돌아가다 다시

되돌아와서 출렁이고 있었지.

그 출렁임은 나의 출렁임이 되고

그 출렁이는 물빛은

내 누님의 눈빛이 되고

나는 그 누님의 눈빛을 줍고 있었지.

千의 눈빛이 단 하나의 눈빛이 되는

그 님의 눈빛은 줍고 있었지.

 

그리고 그때,

바다가 왜 출렁이는가를

출렁여 오고, 출렁여 되돌아 가는가를

나는 지늘켜 듣고 있었지.

 

(19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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