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도무지 밉기만 한데, 어찌 떡을 더 준다는 말인가? 옛날부터 떡이라면 명절 때나 해 먹을 수 있는 귀하고도 소중한 음식이었을 텐데,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 아이에게 그 아까운 걸 더 준다니 이 속담의 뜻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때 주는 떡은 형벌이 아닐 수도 있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그래서 부모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지만, 떡 하나 더 줌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일 수 있다. 설마 아이라 하더라도 염치가 있지, 자신의 잘못을 감싸 주고 격려해 주는 부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겠는가 말이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 만약 벌 받을 만한 짓을 했는데도, 그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면, 거기에 용서라는 절차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벌은 그 집단과 사회에서 누구라도 꺼리는 것으로 부여된다. 두드려 맞든지, 옥에 갇히든지, 저 멀리로 유배를 당하는 따위다. 더러 목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 벌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양팔을 번쩍 높이 들고 버티기를 하든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있든지, 반성문을 작성하든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몇 대씩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는 일도 있었다. 다만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은 고등학교 때에나 부여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 화장실 청소는 누구라도 꺼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수세식이 완비된 오늘날에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일이다. 그 옛날에 화장실 아니 "치깐(측간)"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후각이라는 게 쉽게 마비되는 특성이 있기에 다행이기만 했다. 당사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차라리 몇 대 맞는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고약한 일이 '벌'이 되었기 때문에 화장실 청소라는 정말 원초적 작업은 기피 대상 1호였던 것이다. 오늘도 뭔가 일을 잘못 한 공직자 한 사람이 그 벌로써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한다. 이로써 '지방'은 벌 받는 곳이 확실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에 중간고사에서 1등 한 친구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겼더라면 어떨까? 열심히 변기를 닦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아, 네가 이번에 1등을 한 관엽이구나!" (참고로, 관엽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1등을 한 친구다.) 이런 말을 하면서 흐뭇하게 지켜 볼 것이다. 관엽이는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아이들은 꾸준한 자원봉사로 자신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미운 자식 떡 하나 준다"는 속담은 어쩌면 이처럼 역설적으로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우리 선조들의 바램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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