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이야기

죄와 벌

써니케이 2007. 2. 6. 22:09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도무지 밉기만 한데, 어찌 떡을 더 준다는 말인가?

옛날부터 떡이라면 명절 때나 해 먹을 수 있는

귀하고도 소중한 음식이었을 텐데,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 아이에게

그 아까운 걸 더 준다니 이 속담의 뜻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때 주는 떡은 형벌이 아닐 수도 있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그래서 부모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지만,

떡 하나 더 줌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일 수 있다.

설마 아이라 하더라도 염치가 있지,

자신의 잘못을 감싸 주고 격려해 주는 부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겠는가 말이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

만약 벌 받을 만한 짓을 했는데도, 그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면,

거기에 용서라는 절차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벌은 그 집단과 사회에서 누구라도 꺼리는 것으로 부여된다.

두드려 맞든지, 옥에 갇히든지, 저 멀리로 유배를 당하는 따위다.

더러 목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 벌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양팔을 번쩍 높이 들고 버티기를 하든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있든지,

반성문을 작성하든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몇 대씩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는 일도 있었다.

다만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은 고등학교 때에나 부여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 화장실 청소는 누구라도 꺼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수세식이 완비된 오늘날에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일이다.

그 옛날에 화장실 아니 "치깐(측간)"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후각이라는 게 쉽게 마비되는 특성이 있기에 다행이기만 했다.

당사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차라리 몇 대 맞는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고약한 일이 '벌'이 되었기 때문에

화장실 청소라는 정말 원초적 작업은 기피 대상 1호였던 것이다.

오늘도 뭔가 일을 잘못 한 공직자 한 사람이

그 벌로써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한다.

이로써 '지방'은 벌 받는 곳이 확실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에 중간고사에서 1등 한 친구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겼더라면 어떨까?

열심히 변기를 닦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아, 네가 이번에 1등을 한 관엽이구나!"

(참고로, 관엽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1등을 한 친구다.)

이런 말을 하면서 흐뭇하게 지켜 볼 것이다.

관엽이는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아이들은 꾸준한 자원봉사로 자신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미운 자식 떡 하나 준다"는 속담은

어쩌면 이처럼 역설적으로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우리 선조들의 바램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