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독특한 냄새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주인이 오는 것을 멀리서도 알아내는 것은 그 냄새 때문일 것이다. 다만 사람이 잘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 뿐이다. 체취(體臭)-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결코 상징적인 말이 아니다.
철현이를 기억하는 것은 우선 그 큰 키다. 양은이도 컸고, 철현이도 컸다. 아마 나는 그 다음 다음 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키가 큰 사람들은 다소간 구부정했는데 철현이가 그랬다. 또 그렇게 큰 사람들은 결코 마음이 옹졸하지를 못했다. 철현이는 늘 조용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했지만 결코 말썽 한번 부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철현이를 기억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의 체취다. 그가 등교하면 먼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무슨 냄새? 적정 온도를 약간 지나쳐 버린 식용유 냄새였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냄새를 맡는다면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만큼 그에게서 오랫동안 그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냄새는 철현이 집의 가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안다. 철현이 아버지는 남성의 매점에 식품을 납품하시는 분이었다. 짐 자전거 뒤에 나무상자가 있었고, 납품하는 식품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가끔은 철현이가 그 자전거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현이가 단지 그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냄새가 젖어들어 간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역시 가업에 종사했을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나는 그 냄새를 맡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졸업 앨범에 남아 있는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꺽다리의 인상만 기억되었다. 그리고 거의 40년만에,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컸고, 자기가 누군 줄 알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름이 곧 바로 기억 나지 않아서 멈칫했다. "나 철현이다." "그래, 철현이!" 그는 지금 익산에서 원예 유통업을 하는 사장님이시란다. 친구들 말을 들으니 잘 나간다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장에 대해 '어느 해에 엄청 나게 커버렸다'라고 주장하여 동기들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였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그는 그저 조용했다. 튀는 일은 없었으나, 궂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인내력이라면 그의 일생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체취에는 그러한 그의 성격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떤 냄새로 기억되고 있을까? 옛날에야 다 같이 목욕도 자주 하지 못했고, 이도 제대로 닦지 않고 다녔으니, 저 개발도상국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부모의 관심이 채 미치지 못하는 그냥 사내아이의 냄새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 형편이 비슷했을 것이므로 그건 독특한 체취가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어쩌면 내게서는 약간은 고무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광신고무상회의 긴 의자에 앉아 있다가 9문 짜리 하얀색 '맹꽁이'를 찾아내고, 비닐 봉지에서 꺼내고 다시 넣고, 그리고 제자리에 끼워 넣는 일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상회에서 맡던 냄새는 요즈음 새차에서 나는 냄새와 유사하다고 본다. 친구들이 느끼는 나의 체취에 대한 보고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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