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이야기

기억나는 짝꿍 여학생

써니케이 2007. 2. 11. 20:22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이 힘을 떨쳤다.

초등학교에서는 남녀공학을 했지만 남녀가 짝꿍을 이루지는 않았던 것같다.

어렸을 때부터 한 집에서 살던 인숙이와는 소꿉친구였지만,

사회적인 분위기에 민감했었던지 학교에서 여자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이야기를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동안 훼방하거나

치마를 들추는 짓궂은 짓은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뭐 내가 착해서 그런거가 아니라, 이성문제에는 젬병이었던 탓이었다.

 

그러다 김태학 선생님께서 모처럼 공식적으로 여학생과 동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반에 있는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고, 서너명 정도만 혜택을 받았다.

누가 혜택을 받았을까?

무엇 때문에 선생님은 '남녀동석'이라는 처방을 내렸을까?

 

뭐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이제 와서 감추기도 그렇고

사실대로 말하기로 하자.

요새 말로 하자면 선생님은 멘토(mentor) 제도를 운영한 것이었다.

이해가 조금 빠른 친구와 조금 늦은 친구를 나란히 앉히고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남학생들이 전자에 해당하고 여학생이 수혜자가 되었던 것 같다.

남자끼리, 여자끼리 앉히면 더 소란스러웠을 것을 염려한

선생님의 방침이었다.

 

나는 P의 옆자리를 배정 받았다.

P는 자그마했지만 귀엽고 이쁜 편이었다.

영정통에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아이였다.

여전히 숙맥이었던 나는 그냥 고지식하게 대했을 뿐이었다.

멘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동급생에게 무슨 큰 도움이 되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제자리로 복귀하고 말았다.

아쉬움 같은 것도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별로 관심을 안 두었던 탓인지,

본래 내가 순진했던 탓인지,

아니면 선생님의 거룩한 취지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 탓이었는지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 P의 얼굴과 그 단아한 이미지가

기억되는 것은 무슨 일인가?

당사자는 그 옛날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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