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이후... 비참함과 씁쓸함과 지극한 회한과 망연한 아쉬움. 누구를 탓하리. 무엇을 안타까워 하리. 아, 인생의 부조리여. 옆에 지나가는 열차로 옮겨 타지 못하는 막막함이여. 좋은 기억이 아무리 많았던들, 손에 만져지는 감각이 비록 최선이었다 라더라도, 그 감각과 기억을 억누르는 그 비참함과 이 씁쓸함과 끝 모르는 회한과 아, 인생의 나락이여...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7.05.15
번호의 기억 3890 앞 차 번호판의 숫자를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활발한 연산이 일어난다. 놀음판의 숫자가 아니다. 언젠가 보았던 번호라는 생각과 동시에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돌리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맞다. 그녀의 집 전화번호였다. 3...8...9까지 돌리고도 마지막 0을 포기한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7.04.14
Autumn Coffee 가을에는 인스턴트 커피 한 잔에도 마음이 충분히 젖을 수 있다. 여름 밤에 마시는 소주 한 잔보다도 훨씬 더 말의 실마리를 잘 풀어 준다. 하지만 가을 커피는 농담보다 진담을 가까이 한다. 가을에 진실을 고백하면 그 효과가 오래 간다. 입술에는 오래 그 달콤함이 묻어난다.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10.04
자전거 타기 자전거 타기 스핑크스는 물었다. 아침에는 넷이고, 낮에는 둘이며, 저녁에는 셋인 것이 무엇인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자는 무식한 자로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죄로 목이 잘렸다. 나는 묻는다. 아침에는 셋이고, 낮에는 넷이며, 저녁에는 둘인 것이 무엇인가? 옳게 답하지 않는다면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10.03
문득 문득 가을의 어느 날, 오래 전 연인의 이름이 떠오르는 일이 있었는가? 간단한 이미지만 남아버려 그 모습이 도무지 희미하고, 늘 돌려 대던 전화번호의 국번호조차도 가물가물한데, 어쩌면 기억할 필요도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는데도 말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탓일 수도 있고, 그 바람에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9.30
이사간 강종선 씨 * 평소 가까이 지내던 정신과 의사 강종선 씨가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1년반 전에 대장암을 수술했는데, 그 후 경과가 좋지 않아 간과 임파에 전이되었답니다. 의식을 잃고 겨우 호흡만 거칠게 하던 그를 강남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것이 그저께 저녁이었고, 어제(6월30일) 새벽에..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7.01
바다 미완곡(未完曲) I. 그때, 나는 조갑지를 줍고 있었지. 기슭에 부딪는 물거품은 무지개가 되고, 나도 무지개가 되어서 조갑지에 고인 물을 손으로 받으며 바다를 줍고 있었지. 한 웅큼 손으로 안은 바다, 바다를 몇 번이나 쥐었다 펴고는 나는 다시 모래城을 쌓고 있었지. 모래성을 몇 번이나 쌓고 헐 때마다 나는 그 城..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6.02
출장 길에 따라온 핸드폰 중국 출장을 가는데 핸드폰이 굳이 따라왔다. 항공료도 내지 않고 몰래 몰래 묻어왔다. 핸드폰 창에는 안테나가 한 줄도 보이질 않고 수화기 아이콘에는 / 표가 그어져 있다. 그렇다. 주파수도 맞지 않고 방식도 달라서 그것은 그냥 있을 뿐, 존재하지 못한다.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엔드 버튼을 길게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5.12
산이 늙는 법이 있나? 이번 중국 심양 여행을 통해서 얻은 소감이다. 심양은 벌판의 도시이고, 산의 모습은 단동으로 가는 길에 펼쳐져 있었다. 한국의 산이나 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신선했다. 늙는 것은 오직 사람이 만든 것 뿐이다. 자연은 오히려 날마다 새로워진다. 수만년, 수억년을 새롭게 살아온 산 자락에 사람의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5.06
빛과 생명에 관한 에피소드 I. 염천의 포도를 맨발의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때 절은 손에는 부서진 거울 조각 한 웅큼의 광편을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끄러워 눈을 돌리거나 도망하기 시작했다. 해 넘어간 저녁 아이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 무대는 어둑한 그림자 II. 시장통 저물은 네거리, 소경 일가가 구걸하고 있었다. .. 시(詩)이길 원하는 글들 2006.05.06